-[2012년]/세일러님의 경제시각

진실의 순간 (Moment of Truth) (09.04.16)

유랑검 2009. 9. 18. 16:44

1. 진실의 순간 (Moment of Truth)

2. 미국의 몰락과 화폐환상

3. 미국 패권의 선택

 

 

영어에 Moment of Truth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이 참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Moment of Truth ,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 모든 것이 그 순간에 따라 판가름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말합니다.

 

진검승부의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죽느냐 사느냐 건곤일척의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입니다.

진실의 순간에 결정되는 승부의 결과에 따라 이후 모든 것이 판가름납니다. 그 이전까지 과정이 어땠는지는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왜 이런 순간을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라고 쓰는 것일까?

그것은 진실만이 말하는 순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월드컵 때 진실의 순간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만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원숭이들이 우승후보로서,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잉글랜드, 이탈리아, 심지어 꼬레아까지 열띤 주장을 폅니다. 이 주장에는 원숭이들 각각이 선호하는 축구 스타일, 그 축구팀에 대한 애정, 모름지기 축구는 이래야 한다는 당위 내지 명분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 예상한 결과에 만원씩 걸어라, 하니 모두가 일순간 브라질이라고 생각을 바꿉니다.

 

코믹하지만, 진실의 순간이 어떤 것인지 잘 표현한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이란 어떤 것일까요?

진실을 진실대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은 싫은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기호, 취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됩니다.

낭만과 멋을 추구합니다. 예의를 차리고 격식을 갖추고자 합니다.

어떤 일이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도덕관념 내지 명분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싹 배제해버린 진실한 모습은 보기 싫은 것입니다.

 

왜소하고, 빈약하고, 초라하고, 멋대가리 하나 없는 모습입니다.

보기 싫습니다. 보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추악하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냉엄한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회피하게 됩니다.

진실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의 순간은 가급적 외면하고 싶어합니다.

 

진실만이 말하는 순간이란, 보기 싫은 진실을 똑바로 바라볼 것을 강요받는 순간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적인 사치, 온갖 허례허식을 다 걷어내고 다소 추악하기까지 한 냉엄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 대할 것을 강요받는 순간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상시라면 진실을 진실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소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는 것이 평상(平常)입니다.

 

그러나 비상(非常)시가 되면,

진실의 순간(위기의 순간)이 나를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이제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는,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진실의 순간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진실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어느 쪽에 설 것이냐,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의 깡패짓으로 지난 몇 년간 전세계에 걸쳐 미국을 조롱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욱일승천하는 듯이 보이던 중국을 찬양하는 것이 또 유행이었습니다.

 

지금 미국은 진실의 순간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평상시, 다소 사치가 허용되던 때의 허례허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진실의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감정의 사치, 사고의 사치, 명분의 사치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오직 냉철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당위와 정의에서 벗어나는 면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걸려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국가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제 무대라는 곳이 원래 정글의 법칙만이 적용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평상시라면 국제 무대에도 다소간의 사치가 허용되어 명분도 찾고, 체면도 찾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국가의 선택 하나하나에 국민들의 생존이 걸려 있습니다.

 

이번 경제위기의 핵심 화두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입니다. 달러의 위상이 약화되면서, 유로화, 위안화, 엔화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유로화, 위안화, 엔화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막연히 이렇지 않을까, 흐릿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냉철하게 사유해야 할 것입니다. 사유에 자신의 사상적 기호나, 명분, 당위, 정의감을 반영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의 순간에 사람들이 돈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 동안에도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약거래시 결제수단으로 어떤 돈이 사용되는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의 마카오 비자금은 어떤 돈이었나?

 

달러의 운명,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에 관해 많이 얘기되는 사항 중에, 중국이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 종종 언급되곤 합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내다파는 것만으로 미국을 몰락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순진한 생각입니다. 순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생각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진실의 순간에 결정적 오판을 초래함으로써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동네 깡패에게 빌려준 돈을 내가 원하는 때 마음대로 돌려받을 수 있는가?

깡패가 돌려주기를 원하지 않는 한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합니다. 법이 존재하는 국내에서도 그렇습니다.

국제 관계에는 아예 법이 없습니다.

 

미국의 07년도 군사비 지출액은 6280억달러로 10대 군사대국 중 2~10위인 9개 나라의 군사비를 합친 금액보다도 더 많이 지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07년 세입총액 2 7240억달러 중 23.06%를 군사비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 혼자 전세계 GDP 27.5%를 차지하니 압도적 1위의 경제대국이긴 합니다만, 그 정도로도 미국의 군비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큰 규모입니다.

 

미국이 2차대전 직후 1940년대 중반에 세계 GDP 50%를 혼자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미국은 현재도 당시의 경제력 규모 정도에 걸맞는 군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군비 지출만 좀 줄여도 상당폭 개선될 수 있습니다. 2~10위인 9개 나라의 군사비를 합친 금액보다 많을 정도이니, 좀 줄여도 세계 1위를 유지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미국이 바보라서 군비를 줄이지 않는 것일까요? 미국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투자해서 갖추어놓은 군사력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과 비교할 꺼리 자체가 못됩니다.

자국 영토의 방위가 아니라 세계로 시선을 넓히고 보면, 해군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계 패권을 지향하는 입장에선 육상전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해군력만을 놓고 생각해보면 미국의 군사적 우월성은 더욱 압도적인 것이 됩니다. 전세계 해군 모두가 연합해서 미국 해군과 맞서도 상대가 안됩니다.

 

중국의 원유 비축분은 1개월 분이 채 못됩니다. 중국이 산유국인 것은 맞지만, 자국내 1개월 최대 생산량은 1개월 소요량의 50% 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원유의 안정적인 확보는 중국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중국 지도부가 자원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원유도입선이 미국 해군에 의해 언제든 차단될 수 있는 해상운송로 밖에 없다는 것은 중국의 최대 위협요인이었습니다.

 

중국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중앙아시아와 직접 파이프를 연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빈 라데을 체포한다는 명분 하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중앙아시아에 군사기지를 건설함으로써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중앙아시아 파이프 라인은 미군에 의해 언제든 차단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실상 중국은 미국에 의해 봉쇄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혹자는 러시아와의 연대를 말합니다.

최근 중국은 러시아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 북쪽으로 활로를 뚫었으니 중국으로서는 안심할 수 있을까요? 러시아로부터 원유와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되니 말입니다.

 

여전히 순진한 생각일 뿐입니다.

 

러시아는 작년에 EU가 말을 듣지 않으니 EU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를 차단해버림으로써 굴복시킨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과거 국경분쟁의 경험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제공하는 파이프라인에 원유와 천연가스 수급을 의존하다 러시아와 관계가 불편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외교에 있어 원교근공은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인접국과의 제휴가 깨졌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역사의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소동맹,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나제동맹 등의 사례가 있습니다.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지면 중국으로서는 오히려 미국이 그리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