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시간을 할애해서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이전의 판교는, 일 관계로 한동안 운중로를 지나다닐 일이 있어서 제게 익숙한 곳입니다. 그런데 정작 판교신도시가 들어선 이후로는 가보지를 못해서 어떻게 변했을까 계속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공간, 그 공간이 다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그 상호간의 피드백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라는 공간은 그 결정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의 도시가 탄생하고 자리잡아가는 초기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친 김에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모든 것이 주변 상황에 대한 적응을 끝내고 완전하게 굳어버리기 이전,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초기의 유동적인 모습은 항상 신선하고 흥미로운 법입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라면, 그리고 그 도시가 ‘판교’라면 더욱 흥미진진하지요.
인간이 모여사는 도시라는 존재는,
고대 역사에서 어떤 문화가 문명의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결정하는 한 가지 요소가 됩니다.
유럽의 역사에서 도시는 암흑의 중세를 끝내고 근대로 넘어가는 변혁기의 물리적인 토대이자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는 말처럼, 도시는 중세가 가했던 신분제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상징이었고,
‘경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시의 등장은 ‘시장’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라는 공간은 매우 흥미진진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투기’의 대상, ‘탐욕’의 결정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판교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버블을 이만큼 키운 원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6년 판교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 분양은, 당시 안정세를 보여가던 집값이 재차 급등하도록 불을 붙인 도화선이었습니다.
2006년 봄 부동산 버블 논란이 거세지면서 안정세를 보였던 집값은 그해 9월 판교신도시의 고분양가 파동 이후 다시 급등세를 보이게 됩니다.
당시 판교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에 채권입찰제가 적용되면서 실질 분양가가 평당 1천8백만원에 달하고, 서울 은평뉴타운이 판교신도시의 분양가를 핑계로 주변시세의 두배에 가까운 평당 최고 1천5백만원에 분양가를 책정하자, 미래의 실수요자들이 공포에 질리게 됩니다.
신규 분양가가 계속해서 가파르게 오르기만 하니, 주택구입을 계속 미루다가는 영원히 내집을 장만할 수 없겠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결국 너도나도 무리하게 빚을 내서라도 당장 집을 사는 쪽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9월 이후 아파트 가격은, 강북 및 수도권 일대까지 연쇄적으로 급격한 상승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판교 자체가 도화선에 불을 붙여 우리나라의 전체 아파트 가격을 많이 밀어올린 덕에, 애초에 고분양가 논란을 빚었던 판교아파트는 결과적으로 ‘로또’가 될 수 있었습니다.
2008년말 패닉국면과 맞물려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지면서 한 때 로또에 대한 기대가 허망한 것이었나 위기감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현재는 에코버블과 맞물리면서 프리미엄을 회복하고 역시 ‘판교로또’라는 명성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현지 부동산 사무실에서도 실제로 그런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부동산의 대세하락 국면과 맞물려 많은 비극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판교 현지를 둘러보는 시간은 새로운 도시의 탄생을 지켜보는 흥미로움과 우울함이 뒤섞인 묘한 것이었습니다.
판교신도시의 전체면적은 281만평이고, 주택수는 약 29,350세대입니다.
판교지도를 놓고 보면,
경부고속도로가 판교신도시의 한가운데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를 경계로 동판교와 서판교로 나뉩니다. 가장 오른쪽은 분당-수서간 도시고속도로로 이를 경계로 분당과 맞닿아 있습니다.
좌측으로 보이는 용인-서울 고속도로는 서판교 일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100번 도로는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입니다. 동판교의
이렇게 보면 판교신도시는 고속도로에 의해 포위되고 분할된 형국입니다. 상당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시 구조가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자 하는지, 실제로는 어떤 느낌을 줄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살펴보려는 점 중에 하나입니다.
우선 서판교를 먼저 둘러보기로 합니다.
동판교에는 신분당선 판교역이 위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상업시설을 배치하고 상대적으로 고밀도 개발을 하는데 반해, 서판교는 용적률을 낮추고 쾌적도를 높인 자연친화적 저밀도 개발을 내세웠기 때문에 과연 어떤 모습일지 더욱 흥미가 있습니다.
서판교에 동서로 가로놓인 중심도로인 운중로가 예전에 꽤 자주 다니던 길이어서 먼저 발길이 닿기도 했습니다.
운중로 주변풍경입니다. 표지판에 직진하면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안양이라고 나옵니다. 주변이 허허벌판이나 다름 없었는데 ‘상전벽해’했습니다.
운중로 대로변에서는 어떻게든 손님의 눈길을 끌어보려는 오피스텔 건축현장도 보이고,
이미 완공된 건물도 보이지만 거의 대부분 공실이고,
그 와중에도 새 건물은 한창 올라가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제 막 태어나서 자라잡아가는 신도시의 어수선함이 운중로 주변으로 넘쳐흐르고 있는 중입니다.
운중로 바로 남쪽으로 운중천이 흐르는데, 생태하천으로 말끔하게 단장해놓았습니다.
운중천변의 아파트들입니다. 당연히 생태하천 프리미엄을 내세우겠지요 ^^
아파트 단지 앞 상가의 간판을 찍어보았습니다.
아래는 또 다른 곳 사진...
모두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뿐입니다.
판교만 이런 모습인 것은 아닙니다. 강남 일대에서도 흔하고, 강남 만이 아니라 서울이나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 밀집지역의 상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간판 풍경입니다.
비정상의 와중에 놓여있는 당사자들은 그 비정상에 취하고 마비가 돼서, 자신의 시대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먼훗날 그 비정상 상태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그때를 되돌아보며 그때가 비정상이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 부동산 버블이 정상적인 상태를 훌쩍 넘어서버렸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 이 간판 풍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엄마 어렸을 적엔...’이라는 전시물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난했던 60년대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인데, 현재의 아이들은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관심있게 봅니다.
아마 훗날 2010년 지금을 돌아보면서,
그 시절, 과거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시절에는 이러이러한 진풍경이 벌어졌었다고 회고하는 장면에는 여러가지가 등장하게 될텐데, 그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될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이 상가 전체를 부동산 사무실이 점령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이를 보고 어째서 이렇게 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여튼 신기하고 무지 재미있다며 웃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단지 안내도를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단지 안내도를 자세히 보니 생태연못, 헬스코스 등이 보이고,
솔숲마당, 어린이놀이터, 퍼팅그린 등을 중심으로 단지가 체계적으로 배치되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자동차는 단지에 진입하는 시점부터 지하로 들어가게 처리함으로써 단지 마당에는 자동차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내부구조는 3베이를 기본으로 하는 신평면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최근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의 전반적인 특징입니다.
종래의 성냥갑처럼 찍어내기 바쁘던 아파트와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는 기존의 낡은 아파트에서 새 아파트로의 ‘갈아타기’가 상당히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까지는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있어 낡은 아파트가 오히려 가격이 오른다는 기대심리가 아주 조금은 남아있습니다만, 이와 같은 기대가 사라지고 신 개념 아파트들의 입주가 늘어날수록 차이점이 크게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앞으로 전개될 아파트 가격의 대세하락 국면과 맞물려 낡은 아파트들에게는 재앙으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예전에 잘 모르고 겁도 없이 은마아파트 단지내로 차를 몰고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중 주차가 아니라 삼중주차, 사중주차 쯤은 된 것으로 보이는 자동차의 밀림과 미로를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그 속에 파묻혀 못 나오는 줄 알고 식은 땀이 흘렀습니다.
아파트가 주차하기 편하다는 말은, 지하주차장이 없는 낡은 아파트들의 경우에는 거짓말입니다. 그 보다는 차라리 단독주택이 낫습니다. 그동안 각 지자체마다 공용주차장 보급에 꽤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에 서울 왠만한 지역에서는 단독주택지에서도 주차사정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재건축 기대감이 사라지면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들은 주차장 부족 만으로도 재앙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판교는 저밀도 개발을 통한 쾌적성 확보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공간 배치에 있어서 아파트와 단독주택지를 조화롭게 배치하기 위해 상당한 신경을 쓴 듯 합니다.
아래는 단독주택지를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은 거의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용지매입 시점부터 금융비용이 나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자기가 살 집을 짓겠다는 실수요보다는 투기수요가 가세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아래는 단독주택지가 아니라 상가주택지입니다. 상가주택지에는 건물이 꽤 들어섰는데 대부분 공실입니다.
아래 도로표지판에 도서관이 보입니다. 서판교는 중앙에 도서관을 배치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주택가격에 붙는 프리미엄 중에 ‘도서관 프리미엄’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녀교육에도 좋고, 휴식공간이 되기도 하고, 공짜로 큰 서재와 장서가 생기는 것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가보기로 합니다.
오른쪽에 청소년 수련관, 왼쪽에 도서관을 결합시킨 구조인데, 금토산을 배산으로 해서 남향으로 자리잡은 썩 멋진 모습을 갖춘 도서관이라 마음에 듭니다.
다음 사진은 매우 궁금했던 대상인 ‘테라스 하우스’입니다.
관련기사: 판교 연립단지 3곳 '베벌리힐스'로 조성된다
이 곳은 상당한 명소로 자리잡게 될 듯 합니다.
첫 느낌은 눈맛이라고 할까요, 참 시원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전원 환경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고개를 들고 목이 아프게 한참 높은 곳을 쳐다봐야 하는 고층 아파트에 비해 참 편안하고 시원스런 느낌입니다.
뒷산을 배경으로 운중천을 남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자리기도 합니다.
이곳은 앞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꽤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단점은 고속도로입니다.
사진을 축소시키다 보니 잘 안보이실 듯 한데 산중턱에 보이는 하얀 물체가 트럭입니다.
테라스 하우스의 바로 등 뒤로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속도로에 포위된 판교 전체의 단점이 이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낮인데도 자동차 고속질주의 소음이 좀 들립니다. 이 정도면 아마 밤에는 상당한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은 서울-용인간 고속도로의 모습입니다.
서판교 일부를 관통하는데 어떻게 처리했나 했더니 터널처럼 아예 둘러싸버렸습니다. 방음효과를 높이려고 노력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시가지 한복판을 관통하는 모습은 여전히 옥에 티로 남습니다.
부동산 중개사무실에서 얻은 지도를 보니 ‘타운하우스’ 자리가 있어서 가보았습니다.
아직 터만 잡아놓았는데 SK건설에서 짓는 모양입니다. 이 곳은 배산인 금토산이 고속도로를 완전히 차단해주고 있어서 조용한 곳입니다. 완공된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아래는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과 주변 도로입니다.
예전에 지나다니던 길에 두어번 들렀던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예전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지해서 존재하던 한적한 식당이었는데 역시 ‘대박’이 났군요. 100% 입주가 끝난 것도 아닌데 늘어선 자동차들이 상당합니다.
판교신도시의 최대 수혜지는 이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용이 길어져서 일단 서판교까지 정리했습니다. 동판교는 내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ㅇ 새로 나온 책 링크: 불편한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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