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지난 글
에 대해 거리두기님께서 답글,
를 통해
“은행의 지급준비금이 본원통화의 증가만큼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는 실제 그 은행들이 그 돈을 근거로 신용창조를 통해 시중에 풀었는지 풀지 않았는지를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라는 의문을 제기해주셨습니다.
이 의문 제기는 다같이 생각해볼 만한 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본원통화와 현찰(현금)의 관계입니다.
제가 통화량에 관해 설명드렸던 최초의 글
에서는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과정을 그림으로 정리해서 보여드렸고, 이를 바탕으로 통화량 = 본원통화 + 신용(통화), 라는 점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때 본원통화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고 지나갔습니다.
언젠가 적절한 기회에 본원통화의 구성에 대해서도 한 번 설명을 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질문이 나온 김에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본원통화의 구성을 이해하고 나면 거리두기님의 의문제기는 풀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위 그림은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모델입니다.
위 개념도에서 생략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대출을 받아간 가계나 기업들이 대출금액의 100% 모두를 은행에 재예치하지 않고 일정금액 만큼을 현찰로 보유해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 지갑이나 장롱, 회사 금고 속에 들어있는 현찰들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이를 ‘비은행 민간 보유 현금’이라고 부릅니다.
이 비은행 민간보유 현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 신용창조 개념도에서는 생략되었습니다(개념도에서는 생략되었지만, 그림의 의미를 풀어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간단히 언급했습니다).
비은행 민간이 보유하게 되는 이 현찰의 성격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신용(통화)가 아니라 본원통화에 해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은행들은 예금고객들의 인출 요구에 대비하기 위해 지불준비금을 비축해야 합니다. 지불준비금 역시 본원통화입니다.
이상과 같이 본원통화는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본원통화 = 비은행 민간 보유 현금 + 은행 보유 지불준비금
여기서 은행이 보유하는 지불준비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면, 이 지불준비금은 두 가지 방식으로 관리됩니다.
하나는 시중은행이 자신의 금고에 직접 넣어두는 것, 이는 은행이 직접 보유하는 시재금입니다. 또 하나는 중앙은행에 예치해 두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중앙은행에 맡기는 지불준비 예치금입니다.
결국 은행 보유 지불준비금 = 은행 보유 시재금 +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입니다.
본원통화를 다시 정리해보면,
본원통화 = 비은행 민간 보유 현금 + 은행 보유 시재금 +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7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본원통화 금액은 59조 1990억원, 화폐(한국은행권) 발행액, 즉 현찰 발행액은 32조 7695억원입니다.
본원통화와 현찰 발행액은 왜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중앙은행에 예치시킨 지불준비 예치금은 시중은행들의 현금자산인 것은 분명한데, 일단 중앙은행 내부로 다시 들어간 이상은 화폐발행액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즉 본원통화 구성항목 중에서 비은행 민간 보유 현금과 시중은행 보유 시재금 만이 화폐발행액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본원통화 금액과 화폐발행액의 차이, 26조 4295억원은 중앙은행에 맡긴 지불준비 예치금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설명드린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원통화 = 비은행 민간 보유 현금 + 은행 보유 지불준비금
은행 보유 지불준비금 = 은행 보유 시재금 +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
본원통화 = 비은행 민간 보유 현금 + 은행 보유 시재금 +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
저의 지난 글에서 의문 제기의 대상이 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원통화가 증가한 금액 만큼 거의 그대로 시중은행들의 지불준비 예치금(중앙은행에 맡겨두는 돈)이 증가했다는 의미는, 본원통화의 증가가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 대출증가 = 통화 팽창)에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거리두기님께서 의문을 제기하신 문구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은행의 지급준비금이 본원통화의 증가만큼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는 실제 그 은행들이 그 돈을 근거로 신용창조를 통해 시중에 풀었는지 풀지 않았는지를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거리두기님께서는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이 곧 ‘은행 보유 지불준비금’인 것으로 착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은행 보유 지불준비금 = 은행 보유 시재금 +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 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설명드린 적이 없기 때문에 저의 설명만 읽어오셨다면 착각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싶습니다.
“본원통화가 증가한 금액 만큼 거의 그대로 시중은행들의 지불준비 예치금(중앙은행에 맡겨두는 돈)이 증가했다” 는 사실만을 놓고서,
“본원통화의 증가가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 대출증가 = 통화 팽창)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라고 제가 말씀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도표를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위 도표에서 작년 금융위기가 터져나오기 이전의 기록, 즉
본원통화에 대한 지불준비 예치금의 비율이 매우 작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7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본원통화 금액은 59조 1990억원, 한국은행 지불준비 예치금은 26조 4295억원임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본원통화에서 지불준비 예치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44.65%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08년 8월의 기록을 보면 1.00%입니다.
미국의 지불준비 예치금 비율이 이렇게 작은 데에는 두 가지 사정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이다 보니 현찰 달러의 70% 정도가 미국 영토 밖에 존재합니다. 미국 영토 내에 존재하는 달러는 화폐발행액의 30%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미국의 지불준비율이 사실상 0%이기 때문입니다. 요구불예금에 대해서는 법정 지불준비율이 정해져 있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법정 지불준비율이 실제로 0%입니다.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지불준비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이윤추구 동기나 외형확대 경쟁에 부합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해서 이를 낮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은행들은 하루 마감을 할 때, 요구불예금을 임시로 MMF 등으로 돌려놓음으로써 이 최소한의 법정 지불준비 요구마저도 회피해왔던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상 지불준비율이 0%!!!
규제를 없애고 시장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 사조의 영향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시장에 맡긴 것이 아니라 절제할 줄 모르는 탐욕에 맡겨버린 셈입니다.
작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의 은행들이 얼마나 신용경색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제가 제시한 도표는 FRB가 신속하게 본원통화를 공급하고, 그 금액이 거의 그대로 지불준비 예치금에 쌓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FRB의 이 조치가 없었다면 작년 금융위기 발발시 미국 은행들은 모두가 도미노처럼 무너졌을 것이고, 그 때 이미 본격적인 대공황을 겪게 되었을 것입니다.
영국도 지불준비율 0%로 금융시스템을 운용해왔습니다. 미국보다도 먼저 신자유주의 사조를 받아들였던 나라지요.
금융위기가 터지니 영국에서 은행 예금에 대해 국가가 100% 지불보장을 해준다고 선언했습니다. 지불준비율을 0%로 운용해왔던 취약한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금융시스템을 지탱해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은 사실상 이미 망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사조가 주장하는 대로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둔 결과입니다.
망해서 무너져내린 시스템을 국가가 어거지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가서 미국의 지불준비 예치금이 본원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작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위 도표를 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08년 9월 이후 중앙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자연스럽게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 대출창조 = 통화량 증가)에 사용되었다면,
본원통화 = 비은행 민간 보유 현금 + 은행 보유 시재금 +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 이므로,
본원통화 구성항목 중 ‘비은행 민간보유 현금’과 ‘은행 보유 시재금’도 늘어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 지불준비 예치금만 늘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 도표는 본원통화 증가액이 거의 그대로 지불준비 예치금을 증액시키는 데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본원통화의 증가가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 대출증가 = 통화 팽창)에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물론 본원통화가 8930억불 증가할 때, 지준 예치금은 8240억불 증가했으니 690억불의 차액이 존재합니다. 전체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작기 때문에 이 차액은 무시하고 드린 말씀입니다.
이상으로 거리두기님의 의문점은 해소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덕택에 한번쯤 설명드리고 싶었던 본원통화의 구성에 대해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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