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고라에 처음 썼던 세 편의 글이,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가 환율(외환시장)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 외환시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국가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맨 처음 다룬 것입니다.
그 뒤 이어지는 저의 모든 글들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 나라 경제에 관한 글은, 처음 세 편에서 다룬 외환시장 관련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오해만 부를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줄곧 저의 글을 꼭 처음부터 읽어주십사 하고 당부드리는 것입니다.
저의 이전 글:
환율은 왜 오르기만 했나?
정부당국의 실책과 외환시장의 괴물
그런데 최근에 혜원님께서, 제가 설명드린 내용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시는 글을 써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혜원님의 관련글:
이 글을 통하여 혜원님께서 전개하고 계신 논리에는 단순한 착오에서 비롯된 오해가 있습니다.
어느 부분에 착오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두 분이 오류를 정확히 지적해주신 것을 보고 저는 논쟁이 정리가 된 줄 알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심심치 않게 저에게 댓글로 혜원님의 논리에 대해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렇게 정식으로 반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혜원 님이 써주신 본문 내용을 보면, 자신이 전개하고 있는 논리의 핵심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리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와 보면,
“다시 정리하면, 선박 수출금이 경상수지에 잡힐 때는 인도시점이고, 인도시점에 경상수지에 선박수출대금 총액이 잡힙니다.
그러나 수주잔량이 2년치 이상 있어 계속 선수금, 중도금이 들어옵니다.
고로 경상수지가 허수라도 자본수지에 달러가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달러 수급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경상수지 흑자로 인하여 유입되는 달러량과 자본수지로 유입되는 달러량의 차이를 정확히 계산해내지 못한다면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댓글 중에도 같은 논리를 정리해주셨습니다.
수주잔량이 2년치 남아 있습니다. 새로운 수주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2년간은 선수금, 중도금, 잔금이 (외환 현물시장에) 유입됩니다.
이를 정리해보면, 혜원님께서는 선박 수출대금이 ‘인도시점에 한꺼번에’ 수출실적으로 잡힌다는 사실은 제대로 인식하고 계십니다.
즉 수출실적으로 전체 금액이 잡히지만, 20% 선인 잔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허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20%선인 잔금조차도 선물환 매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외환 현물시장에 달러의 공급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점도 알고 계신 듯 합니다.
혜원님 주장의 핵심은,
이처럼 해당월에 수출실적으로 잡히는 부분에서는 달러의 공급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우리나라 조선업체에는 수주잔량이 2년치 이상 쌓여 있기 때문에 이 수주잔량 부분에서 선수금과 중도금이 계속 들어오고,
이 부분은 외환 현물시장에 달러의 공급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환 현물시장에 달러의 공급 공백이 존재하기 때문에 환율의 상승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혜원님의 논리에 대해서는,
수주잔량은 남아있지만요.. 2년간 유입된다고 주장하시는 선수금(사실 선수금은 수주할 때 받는 거니까 새로운 수주가 안되면 이건 없구요), 중도금과 잔금은 유입되는데..그게 자본수지로 유입되든 경상수지로 유입되든(당연히 자본수지로 유입되는게 맞지만) 조선업체들은 그렇게 들어오는 중도금과 잔금에 대해 모두(100% 헤지 가정하면) 선물환으로 미리 팔아놨습니다. 그러니까 중도금과 잔금이 꾸준이 유입되겠지만 다 그냥 빠져나가는 돈이 됩니다.
자본수지에 건조중인 선박에 대한 자금(중도금)이 계속 유입되더라도 그게 허수기 때문에(이미 선물환으로 헤지했으니까) 자본수지 흑자분은 달러공급량에서 고려되어 봤자 제로가 됩니다. 지금 수주가 계속 된다면 그 수주분에 대한 선물환이 외환시장으로 들어오겠지만요. 그게 없으니까요
새로 수주되는 물량이 별로 없다는게 문제 아닐까 하네요.. 비슷한 물량이 계속 수주가 되면 자본수지로 들어오면서.. 똔똔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기존의 '중도금'만 들어오는 상황일테니까요. 결국엔 경상수지 흑자가 아니라 실제로 들어올 달러를 따로 구해봐야 된다는 거구요...
한 가지 보강하자면,
혜원님께서 최초의 글에서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항목 구분을 강조하시다 보니 이어지는 댓글에서도 계속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항목 구분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항목 구분이 반복되는 것이 오히려 논지를 헷갈리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외환 현물시장에 달러가 공급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일종의 현금흐름을 따져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경상수지, 자본수지 이렇게 항목을 구분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오히려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음의 그림을 첨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조선업체 선물환 매도가 점점 한국경제의 이슈로 부각이 되면서 증권사 분석자료에 나타난 그림입니다.
위 그림은 표준적인 계약의 경우입니다. 이 경우 대금 지급은 보통 5회 정도로 나누어 이루어집니다.
선수금은 계약하면서 바로 받기 때문에 환헷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20% 정도의 대금은 해외 자재 구입에 쓸 예정(달러 상태 그대로)이므로 역시 환헷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조선업체들은 대략 60% 정도를 선물환 매도를 통해 헷지하게 되는 셈입니다.
대신증권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환헷지 비율을 53%로 잡고 있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60%가 넘게 잡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08년 2/4분기로 넘어오면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을 보이게 되면서 환헷지 비율이 좀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외환시장의 상황을 이해하시는 데에는, 대략 60% 선으로 생각하시면 큰 오차는 없을 것입니다.
위 그림을 놓고 보시면
선수금은 계약할 때 바로 받는 것이므로 수주잔량이 2년치가 남아있다고 해서 계속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2년치 수주잔량에 대해서도 이미 다 받은 것이고, 오직 신규 수주가 이루어질 때만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신규 수주는 거의 제로 상태입니다.
2년치 수주잔량에 해당하는 중도금, 잔금은 일정이 진행됨에 따라 계속 들어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선물환 매도를 해놓았기 때문에(선물환 매도는 계약시점에 하게 됩니다) 외환 현물 시장에 달러 공급이 되지 않습니다.
환헷지를 하지 않은 20% 부분은 해외 자재 구입을 위해 해외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역시 우리 외환 현물시장에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혜원님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착오에서 비롯된 오류입니다.
수주잔량이 2년치 남아 있습니다. 새로운 수주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2년간은 선수금, 중도금, 잔금이 (외환 현물시장에) 유입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혜원님의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겠습니다.
작년에는 경상, 자본 다 적자였습니다. 이유를 아시지요? 원래 이부분은 다음 글에서 다 말씀드릴려고 했습니다만, 위에 적은대로 오늘 이글 끝으로 아고라에는 글 올리는 거 관둘 생각입니다. 그래서 님께 간단히 말씀드리면 금년 흑자가 상당할 겁니다. 예를 들어 200억불이라고 가정해도 한달에 20억불(1월달 적자 계산해서) 정도입니다. 누군가는 이 흑자 예상치에 또 반론할 겁니다. 유가라던지, 인플레라든지.. 그러나 이것이 다 수요-공급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혜원님은 이상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올해 한달에 20억불씩 흑자가 난다면 이로 인해 환율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혜원님의 흑자 예상치에 대해 반론하지 않고 그대로 다 인정한다고 해도 그 정도 금액으로는 환율을 하락시키는 쪽으로 작용하지 못합니다.
금년 1년 동안 조선업체들의 수출 예정금액(조선업의 특성상 3,4년 전에 수주를 받아놓고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올 한해의 수출 예정금액을 뽑아볼 수 있습니다)은 550억~600억달러로 추산됩니다.
그럼 월평균 조선업체의 수출실적은 대략 50억달러 좀 못 미치는 선이 될 것입니다(실제 3월 수출실적도 이에 육박합니다).
혜원님의 주장대로 한달에 20억불 정도의 흑자가 난다면, 국내 외환 현물 시장에 달러의 공급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위 그림을 토대로 생각해보신다면 쉽게 이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조선업체의 월 수출실적 50억 달러 중 해당월에 실제로 달러 현찰이 들어오는 것은 잔금 20% 뿐입니다. 나머지 80%는 이미 받은 돈입니다.
그 잔금 20% 조차도 이미 선물환 매도를 해놓은 금액입니다. 그럼 이 금액조차도 외환 현물시장에 공급으로 작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혜원님께서 생각하셨던 수주잔량 2년치로부터 들어오는 선수금, 중도금, 잔금이 외환 현물시장에 달러의 공급으로 작용한다는 부분에는 오류가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혜원님이 주장하시는 대로 한달에 20억불 정도의 흑자가 난다 해도, 국내 외환 현물 시장에 달러의 공급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혜원님께는 항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하지만 혜원님께서는 두 분의 정확한 지적에 대해 귀담아 듣지 않으시고 거꾸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글 다음에 그럼 왜 제가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지난글에 밝혔듯이 국제수지에 관한 사항을 올릴 예정입니다만, 이 글에 대한 반응을 보고 아고라에 대한 한계를 느낀다면 이 글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
저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는 몇 분께 감사드립니다.
국제수지에 관한 다음 글로 앞으로 왜 환율이 하락할 것인지를 말씀 드릴려고 했으나 댓글에 답변을 적으면서 위에 말씀드린 대로 많은 분들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달내 환율이 더 하락할 것입니다. 이 말만 전해드리고 이만 끝내겠습니다.”
혜원님께서는 본인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지적한 아고리언들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으시고, 거꾸로 ‘아고라의 한계’를 탓하시며 절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댓글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남기셨습니다.
아고라를 통해 유명해지신 분들의 책은 되도록이면 이런 견해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참고하시는게 좋습니다. 경제를 왜곡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위기에 다시 읽는 경제교과서>를 보세요. 절대 후회하실 일 없을 겁니다.
제 생각엔 모든 책에 대해 ‘이런 견해도 있구나’ 정도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상이 굳이 ‘아고라를 통해’ 유명해진 사람들의 책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제를 왜곡해서 본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좀 지나친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혜원님께 항의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2012년] > 세일러님의 경제시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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