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이야기

현재의 경제난과 기존 경제학 그리고 ...

유랑검 2009. 8. 13. 19:28

현 경제학은 경제현상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간주한다. 여기에는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경제학자의 희망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경제가 균형을 이뤄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경제학자들은 믿는 것이다. 실제로도 경제는 대체적으로 안정적이다. 가끔은 위기가 눈앞에 닥치기도 하고 파국적 상황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정상을 되찾아가곤 한다. 경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는 항상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기도 하다. 생산은 충분히 소비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재고가 항상 존재하며,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생산에 따른 소득도 모두 분배되지는 않는다. 흔히 사내유보가 발생하고, 가끔은 대손충당도 나타난다. 소득이 모두 소비되는 것도 아니다. 저축이 항상 존재한다. 저축이 모두 투자되는 것도 아니다. 투자가 더 부족하여 경기를 하강시키기도 하고, 투자가 더 과잉이어서 경기를 과열시키기도 한다. 저축이 모두 소모되지 않고 축적되어 금융자산을 이루며, 금융자산은 대체적으로 증가하고 가끔은 감소하기도 한다.

그럼 경제는 불균형 상태일까? 정태적으로는 틀림없이 그렇다. 그렇지만 경제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다. 경제가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었다면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제가 오랜 세월 안정적이었다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충분히 간주할 만하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동태적 균형으로 풀어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정태적으로는 불균형처럼 보이지만 동태적으로는 균형을 이뤄왔다고 봐야 비로소 이 문제가 풀린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지구의 공전은 나선형 운동이다. 이 나선형 운동을 원 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히 균형에서의 이탈이다. 그렇지만 지구는 지난 50억년 동안 안정을 유지해왔다. 지구의 나선형 운동도 균형을 이뤘던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나선형 운동을 하고 있으며, 안정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곧 공급이 더 빠른 속도를 내면서 수요를 추월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재고가 감소하기도 하고 증가하기도 한다. 투자가 저축을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곧 투자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저축을 추월하기도 한다. 저축이 지나치게 많으면 이자율이 떨어져서 투자를 촉진하고, 투자가 지나치게 많으면 이자율이 높아져서 저축을 촉진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경기가 상승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한다. 경기의 상승이 경제의 악순환을 막아주며, 경기의 하강이 경제의 무한 확장을 억제해준다. 그래서 경제는 동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경제학은 여전히 정태적인 균형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전문가의 경제분석을 흔히 오류로 이끌곤 한다. 경제는 분명히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으로 유지되고, 경제현상도 이것에 의해 나타난 것인데, 현 경제학의 정태적 균형에 매몰된 경제전문가들은 그 중 하나만을 보고 너무 쉽게 분석하곤 한다. 물론 경제가 정태적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수요와 공급 중 어느 하나만을 관찰해도 경제가 어디로 흘러갈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은 정태적으로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의 역동성을 낳는다.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 가격이 오른다. 공급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 가격은 떨어진다. 총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 경기는 머지않아 상승하고, 총공급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 경기는 머지않아 하강한다. 수요와 공급을 그리고 총수요와 총공급을 함께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경제통계는 수요와 공급을 그리고 총수요와 총공급을 일치시킨다. 수요와 공급 중 어느 것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지, 총수요와 총공급 중 어느 것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통계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현 경제학의 한계가 경제통계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인 오늘의 주제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석유가격이 2001년 말 19.3달러에서 2007년 말 91.3달러까지 무려 4.7배 나 폭등했어도 세계경제는 비교적 호조를 이어왔다. 반면에, 과거 두 차례의 석유파동 때에는 세계적인 경제난이 닥쳤었다. 제1차 석유파동 때에는 석유가격이 3달러 수준에서 12달러 수준까지 약 네 배가 상승한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했다. 제2차 석유파동 때에는 석유가격이 12달러 수준에서 36달러 수준까지 약 세 배가 상승한 뒤, 경제적 타격은 제1차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여 많은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두 자리 수를 기록했다.

이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잊지 않은 경제전문가들은 석유가격이 2001년 말보다 2배 이상 올라서 40달러를 넘어섰던 2004년 하반기부터 제3의 석유파동을 경고해왔다. 세 배 이상 올랐던 2005년 하반기부터는 경고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 왔다. 그러나 4.7배나 더 올랐던 2007년 말까지는 세계 어디에서도 석유파동의 징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왜 이처럼 경제전문가들의 거듭된 경고는 지난 3년 동안 줄기차게 틀렸을까? 당연히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이 경제현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더 직설적으로는, 현재의 경제학이 그렇게 판단하도록 경제전문가들을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이지만, 과거 석유파동 때에는 공급이 석유가격 폭등을 불렀다. 석유가격이 먼저 폭등하자 물가는 당연히 상승했으며, 물가가 상승하자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경기는 하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심각해졌었다. 반면에, 최근에는 수요가 석유가격 폭등을 불렀다. 특히 인구 13억의 중국과 인구 11억의 인도가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에너지 소비증가율이 20~40%에 이르렀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처럼 중국과 인도 등의 수요가 급증했다는 것은 세계경제에 특수를 선물로 안겨줬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들 나라의 급성장은 저임금에 바탕을 둔 값싼 상품이 세계 경제에 충분히 공급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세계경제의 물가는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경기후퇴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2008년에 들어선 뒤부터는 상황이 좀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경기후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일본과 유럽도 경기가 조금씩 더 부진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물가가 불안해지는 가운데 경기가 하강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경제전문가들은 흔히 제3의 석유파동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원인분석이 틀리면 처방도 틀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현재의 경제난을 풀어낼 적절한 정책을 마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확한 원인분석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부진해진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석유가격 폭등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로 이런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나타났었다. 1980년대 말에 현재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거의 똑 같은 저축대부조합의 도산사태가 터졌을 때 미국 경제는 비교적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1990년 성장률은 0.8%를 기록했고, 1991년에는 -1.0%를 기록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심각한 경제난을 직면했다. 무엇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말쯤 10%를 넘어설 것 같고, 내년에는 더 불안해질 것 같다. 5월 현재의 물가상승률은 원재료 79.8%, 중간재 23.1%, 생산자물가 11.6%, 소비자물가 4.9% 등을 기록했다. 물가상승은 시간을 두고 원재료 → 중간재 → 생산자물가 → 소비자물가 등으로 연쇄적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이처럼 물가가 불안해지면 같은 소득으로 더 적은 소비를 할 수밖에 없으므로 경기는 빠르게 하강할 수밖에 없다. 전기비 성장률은 빠르면 3/4분기부터, 늦어도 4/4분기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이라면 극단적인 처방을 펼쳐서라도 경제난이 더 심각해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석유가격 폭등이 현 경제난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석유가격만 안정되면 경제가 호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원인분석이 틀렸다면, 경제가 어디로 흘러갈지 진단하는 것도 틀릴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그들의 진단은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전문들이나 정책당국과 토론을 하거나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나는 너무 큰 장벽을 느끼곤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을 탓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기존 경제학에 충실할 따름이다. 그리고 기존 경제학이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 내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여기에 한 마디 남겨놓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경제난을 방치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고, 그 처방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만약 원인분석이 틀렸고 현 경제상황의 진단조차 정확하게 해내지 못하는 경제전문가들이 섣불리 처방을 내린다면, 그리고 그것을 경제정책에 반영한다면, 경제난은 점점 더 심각해졌으면 해졌지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설령 석유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석유가격은 그 시기가 언제일지만 문제일 뿐 장차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다. 어쩌면 하반기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경상수지 역시 정책당국이나 경제연구소들이 걱정하는 바처럼 백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반기부터는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으며, 연간 실적으로도 어쩌면 흑자를 기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물가불안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고, 경기는 조만간 하강으로 돌아설 것이다. 이것을 막아낼 강력한 경제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외환보유고를 풀어서라도 환율을 하락시키는 극약처방도 불사해야 한다. 다만, 이것은 극약처방인 만큼 그 독을 완화시킬 보완책도 함께 펼쳐야 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고유가 환급제나 추경예산 편성 등의 정책들은 경제난을 더 심각하게 할 뿐이다. 지금처럼 물가가 불안할 때에 수요 진작을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이 증가함으로써 물가만 더 불안하게 할 따름이다. 경기를 진작시키는 정책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앞에서 끄는 것과 뒤에서 밀어붙이는 것이 있다. 세금을 환급하고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이자율을 인하하는 것은 앞에서 끄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디플레이션 상황에나 맞는 정책이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방법은 회초리를 휘둘러서 소나 말을 몰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 방법이다. 환율을 하락시키는 것은 그런 대표적인 정책이다. 환율을 하락시키면 수출기업은 물론이고 수입품과 경쟁해야 하는 내수기업도 생존의 기로에 서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좀 더 높은 생산시설을 도입해야 하고,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야 하며 디자인 개발에도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기술개발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기업들은 도산할 수밖에 없다. 환율 하락이 기업에게는 뒤에서 휘두르는 회초리나 다름없다. 이 정책은 기존 경제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경제전문가나 정책당국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