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이야기

재밌는 환율 이야기~

유랑검 2009. 8. 13. 19:19

◆ 일 좀 하고 싶어서 올리는 글

결국 올 수 밖에 없었던 환율폭등 장세가 서울 외환시장에서 현실화되고 나니 메뚜기 한 철이라고 필자의 경우 일이 안 될 정도로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있다. 질문은 대동소이하다. 갑자기 환율이 왜 이러는 것인가? 국제외환시장에서는 달러가치가 연일 추락하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왜 이렇게 달러 값이 천정부지냐? 정부(외환당국)의 달러매도 개입이 나올 것 같지 않으냐?… 그리고 작금의 환율급등(원화가치 급락)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 시황에서도 핵심을 못 짚는 얘기들이 많이 오간다. 그런 식의 상황인식이나 장세 판단으로는 자칫하면 실려나가기 십상인데, 그저 외국인들이 주식을 많이 팔아 환율이 오른다 식의 나이브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늘 올리는 글은 필자가 아침마다 회사 홈페이지에 올리는 데일리 전망 3월 18일자다. 한경닷컴 사이트는 훑어보면서도 아직 ‘조폭’의 환율 전망을 매일, 매월 체크 안 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 하여, 그리고 하루짜리 글로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 많은 비밀(?)들이 녹아있어 여기에 옮겨 싣는다.

◆ 3월 18일자 데일리 시황

                                       [달러/원 일간차트] 

 차트인용 : Infomax, 3월 17일 장 마감 후, 이하 같음

‘답 안 나오는 시장, 대책 없는 환율’이 되고 말았다. 장 중 고점 1,032원에 종가는 지난 주말 대비 32원(31원 90전) 오른 1,029.20원으로 달러/원 환율이 급등하였고 100엔이 붕괴된 달러/엔 환율은 아시아 환시에서 더욱 하락세에 탄력이 붙어 뉴욕종가보다 2엔 이상 급락하면서 엔/원 재정환율은 무려 50원 이상 뛰어오르면 100엔 당 1,060원에 이르렀다. 달러/원 일간차트는 지금 상황에서 평소 짚어나가던 기술적 저항 및 목표가격 운운이 무의미하다고 외치고 있으며 아래 엔/원 재정환율 월간차트를 보면 거의 97년 겨울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를 방불케 된다. 

                                           [엔/원 월간차트]

엔/원 환율의 경우 980원(박스권 하단)의 붕괴 이전 박스권 상단은 1,120원이다. 단숨에 돌파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던 100엔 당 980원이었지만 ‘손절장’으로 가다 보니 “내가 왕년에는~’ 하는 식의 족보 자랑은 설 자리가 없다. 달러/엔 환율이 97엔 정도에서 추가하락이 막힐 경우 엔/원 1,120원을 가려면 달러/원 환율이 1,086원 정도가 계산되어 나오고 달러/엔 환율이 95엔 정도로 추가하락 한다면 달러/원 환율 1,064원으로도 엔/원 1,120원은 가능하다. 지금 BOJ가 다른 중앙은행들과 공조하여 달러매수 개입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도는 형편이지만 위의 두 시나리오 중 둘 다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고 현실화 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 최근 환율 흐름이다.

왜 환율이 이 난리인가?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주식을 많이 팔아서? .. 물론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판 것은 굳이 금년 들어서의 현상이 아니지 않은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고 있어서? .. 물론 상당히 묵직한 변수이다. 그러나 이걸로
작금의 장세를 설명하려 들면 “교수님!” 소리 듣는다. 한국 경상수지 2008년에 적자로 돌 줄 몰랐단 말인가?
외국인 배당금 수요가 몰려들어서? .. 물론 3월이면 해마다 시황에서 접하는 소위 게절적 변수요 이벤트성 달러수요다. 그러나 금년에만 외국인 배당금 역송금 수요가 나오는가? 금년 배당금이 예년의 몇 배라도 된단 말인가?
글로벌 달러가 약세라서? .. 묻고 나니 부끄러워지는 질문이다.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가 약세라면 달러/원 환율도 약세라야 하고 지난 수 년 동안 서울 환시에서 환율이 주구장창 떨어질 때 이유가 글로벌 달러약세 때문이라 했는데, 달러약세 때문에 서울에서 달러가 강세라니?

그렇다면 왜?

쏠려 다니다 큰 탈이 나버린 때문이다. 누가 쏠려 다녔기에? .. 한국의 기업들, 금융기관들, 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전망을 내놓는 기관들, 언론, 그리고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외환시장을 이루는 모든 시장참여자들에 이르기까지 쏠림현상에서 자유롭다 할 곳은 없다. 

하루 20~30원씩 뛰는 환율에 내놓을 수출업체들의 매물이 (없지는 않지만) 거의 말랐다. 2004년 말부터 2007년 말까지 3년 동안 들고 있는 달러, 앞으로 3~4년에 걸쳐 유입될 달러에 이르기까지 선물(환)이 되었건 옵션이 되었건 간에 미리 팔아버린 곳이 너무 많다. 미국 달러가 약세로 가니 원화강세 또한 끝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았고 국내외 금융기관이나 연구소는 죄다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고 금융권에서 가져오는 환리스크 헤지 상품도 매도헤지 일색이었다.

수입업체들은 외환위기 이후 죄다 물러서기만 했다. 90일이 되었건 180일이 되었건 연지급수입(usance)으로 달러결제를 뒤로 미루기만 하면 환차익을 거두어 왔으니, 2008년에도 환율은 더 떨어져 800원대로 진입한다고들 하니 사야 할 달러 가 있어도 무작정 뒤로 미루기만 했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한 해외주식투자 붐이 지난 몇 년간 불어 닥치면서 돈이란 돈은 죄다 해외펀드로 몰렸고 그 돈들은 브릭스를 비롯하여 우리보다 못한 나라, 그래서 무작정 묻어두면 돈 될 것 같은 나라들로 쏟아져 들어갔다. 환율이 더 떨어진다니 해외펀드에서 나중에 들여올 외환(달러든 유로화든 엔화든)에 대한 매도 헤지 또한 예외 없이 이뤄졌다.

기업체든 투신권이든 달러 매도헤지에 나서면 이에 응하는 은행권에서는 현물환 매도를 통한 헤지가 불가피하고 나중에 들어올 달러를 미리 내다팔아야 하다 보니 FX스왑(Buy & Sell)이든 통화스왑(CRS 리시브)을 통해 현물시장에서 매도할 달러를 만들고(그러다 보니 스왑 포인트는 계속 눌려왔고 CRS 금리도 계속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은행권의 스왑에 대응하는 상대방 은행은(외국계 은행이 주를 이룸) 바깥에서 달러를 들려올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곧 단기외채의 급증으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서브프라임發 글로벌 신용위기가 터졌다. 이미 1년 전에 언뜻 그림자가 비쳤고 작년 8월과 11월 두 차례 서로 믿지 못해 돈이 안 돌면 시장이 어떻게 꼬일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해외투자 붐은 식지 않았고 환율하락 전망은 여전했으며 ‘팔자’ 위주의 기업들 헤지 전략에도 변화의 조짐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장난이 아니다. 얼마 안 되는 자산을 담보로 유동화시켜 팔아 또 투자할 자금을 만들고 그 유동화 증권을 사들인 측에서는 돈 들어올 구석 있다고 또 그 권리를 담보로 재차 유동화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만들고.. 이러다 보니 몇 푼 안 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loan)이 전세계 금융기관들의 대차대조표를 잔뜩 부풀려 놓았고 그 얼마 안 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해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칼라일 캐피탈은 마진콜(margin call)요청을 감당 못해 청산 절차로 들어갔고 85년 역사를 자랑하며 미국 내 5위의 투자은행이라는 베어스턴스가 결국 FRB의 긴급 자금지원을 받아야 하는 형편으로 처하더니 몇 시간 만에 JP모건에 주당 2달러씩 받고 2억 7천만 달러에 팔리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은 이럴 때 할 줄 아는 것이 그저 정책금리 낮춰주고 세금 깎아주는 것 뿐이다. 여전히 지구촌에 흘러 다니는 돈(유동성)은 풍부하지만 ‘신뢰의 붕괴(그것이 금융기관 간의 신뢰 붕괴든 미국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붕괴든)’는 달러 유동성 부족을 야기하였고 이는 바다 한 복판에서 물은 많은데 마실 물은 없다는 격이 되고 말았다. 한 푼의 달러라도 회수해서 본국으로 들여와 마진콜도 막아야 하고 고객들의 환매 요구에도 응해야 하고 배당도 줘야 하고 부실채권 상각도 해야 하는 판국이니 증시가 무너지는 것은 뉴욕이나 아시아나 유럽이나 남미나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서울에서는 한 달이나 석 달 간격으로 연장하며 꾸려가는 단기외채의 롤오버(roll-over)에 차질이 빚어지니 급해진 금융기관들은 원화를 주고라도 달러를 사겠다고 스왑시장으로 몰려들어 CRS금리가 폭락한다. 시골에 논도 많고 산도 많지만 당장 세금 낼 돈 없고 놀러온 친구 밥 사줄 돈이 없는 경우나 다름없다. 스왑 베이시스(CRS-IRS)의 확대는 달러를 차입해 들여와 ‘CRS 리시브’ 수요에 ‘CRS 페이’로 대응하여 원화를 만들고 그 원화로 국내 단기채를 매수하여 무위험 차익을 거두던 기관들의 손절을 유발하니 스왑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꼬이게 된다. 스왑금리의 급락과 채권수익률의 급등..

기업들은 황당해졌다. 당장 돈 안 든다는 의미로 갖다 붙인 것 같은데, 은행에서들고 온 제로 코스트 옵션인가 뭔가를 체결했더니 지금처럼 환율이 급등하면 원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달러를 사서 갚아야 한다고 한다. 글로벌 증시가 연일 추락을 거듭하니 매도 헤지 했던 투신권은 헤지 비율을 줄여야 하니 레벨불문 사야 하고, 거기에다 이제는 환율의 상승 폭 자체가 너무 커 마진콜이 우려되어서라도 매도 규모를 줄여야 하니 또 달러 사야 한다. 몇 달 만에 100원이 오른 환율에 예전 같으면 “이게 웬 떡이냐?”며 수출업체 매물이 쏟아져 나와야겠는데, 팔 달러도 없는 데에다 이런 식으로 환율 오르는데 급하게 매물 내놓을 바보도 없다. 대신 사야 할 곳은 언제 이 급등세가 진정되나 노심초사 기다리다가 조정 없이 치솟기만 하는 환율에 뒤늦게 아주 용감해진다.

막상 이렇게 따져보면 크게 잘못한 곳은 없다. 원칙대로, 정석대로,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리스크 헤지했고 그 당시로서는 가장 돈 된다 싶어 택했던 의사결정들이다. 그러나 ‘탐욕’과 ‘공포’로 움직이는 시장이라 본다면, 지난 수 년간 서울 금융시장을 지배했던 탐욕은 이제 공포로 바뀌었다. 주식에서도 환에서도 모두가 벌기보다는 터지는 장이 되면서 아닌 말로 아주 더럽게 판이 꼬이고 말았다.

연준은 시장의 모럴 해저드 우려에도 불구하고 별 짓 다하고, 시장에서 담보가치도 인정 못 받고 거래도 제대로 안 되는 채권들을 들고 있는 금융기관에 트리플 에이(AAA) 신용등급을 메긴 S&P가 베어스턴스가 망하기 하루 전날 신용위기의 끝이 보인다면 ‘삐끼 노릇’을 자처하면서까지 시장이 맞아야 할 매 안 맞게 하고 흘려야 할 피 안 흘리게 하는데, 서울에서도 외환당국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달러매도개입에 나섬으로써) 시장 안정화에 나서야 할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알트-A 모기지 시장이나 다른 대출시장으로까지 서브프라임 부실의 불똥이 튀면 자칫 1조 달러에 달하는 금융권의 손실 상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판국에 2,600억불 남짓 되는 외환보유고 곳간을 함부로 열 일도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소집해 놓은 긴급경제위기 대책회의에서 밤 사이 무슨 카드를 제시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하겠으나, 그 어떤 수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 또한 ‘일회용 반창고’에 불과한 상황이다. 오늘 글로벌 증시가 이토록 급락하고 환율은 32원 튀어 올랐으니 내일 투신권의 달러 매수는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지난 몇 년간 너무 많이 팔기만 했다”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작금의 환율 폭등 상황이나 스왑시장의 흐름은 도저히 쫓아갈 수 없게 된다.


☞ 필자도 살자고 이렇게 5장에 걸친 [전일동향]을 쓴다. “왜 환율이 이 지경으로 가느냐?”는 똑 같은 질문에 하루 몇 차례씩 응대하려다 보면 일이 안 된다. 읽고도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린 월간 환율전망보고서와 연간전망 등을 참고하시길.. 결국 2008년 환율은 ‘self-fulfilling(자기실현적)’ 환율이 아닌 ‘inevitable(꼼짝 못하고 당하는)’ 환율로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