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
오늘날에는 경제학(economy)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만 원래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를 보면 정치와 경제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평상시에는 경제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돌아가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비상시가 되면 경제가 정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08년말 터져나온 경제위기 이래로 이러한 모습을 뚜렷하게 목격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국민경제가 국내 정치에 의존하는 모습이 위주였다면, 아마 내년부터는 경제가 국제정치에 얼마나 의존적인지 본격적으로 노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 며칠 동안에도 벌써 극명한 사례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하나는 바로 우리나라가 주역인 UEA 원전 수주건입니다.
이 수주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말들이 많습니다만, 다음 워싱턴포스트의 평이 비교적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중매체이다 보니 덜 노골적인 방식으로 포장해서 전달하고 있긴 합니다만...
---------------------------------------
UAE, 非핵강국 수출길 열어 [WSJ] 연합인포맥스
-韓, 가격경쟁력ㆍ정치로부터 독립성 장점..기술 보완 필요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효지 기자
......
WSJ는 칼럼에서 UAE의 원전 사업자가 한국으로 선정된 것은 놀라운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핵에너지 산업이 생각했던 것만큼 소수 독과점 체제가 아니라는 점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UAE가 정치적, 군사적으로나 원유 산업과 관련해 자국과 긴밀한 관계가 아닌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개방돼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면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감안할 때 UAE가 미국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뜻밖"이라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 미국은 UAE를 특별히 주목해야 할 국가로 선정할만큼 양국 관계는 긴밀해졌다. 미국의 대 UAE 수출은 2008년 150억달러로 6년새 4배로 늘었으며 UAE는 중동에서 미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UAE의 대미 투자도 씨티그룹을 포함해 크게 늘었다.
신문은 UAE의 원전 공사 성격을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에너지 프로젝트로 규정하고 한국은 미국과 달리 중동에 대한 영향력이 덜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걸프 리서치센터(GRC)의 크리스천 코흐 수석 애널리스트도 "2017년에 첫 번째 원전이 가동되는데 지정학적 환경 변화로 UAE의 민간 핵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반대가 증가하면 원전 추가 공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WSJ는 한국 원전의 가격 경쟁력에도 주목했다.
신문은 한국의 수주계약을 계기로 프랑스 아레바가 지닌 유럽의 선진 가압경수로(PWR) 기술이 지나치게 크고 비싸다는 논란을 재점화할 것이라며 한국이 건설하는 원전은 1천400메가와트급으로 아레바의 1천650메가와트급보다 작지만 수억달러 저렴하다(‘수억달러’라는 것은 번역과정의 오류임. 원문을 찾아보면, The $20 billion Korean bid was $16 billion lower than the French group's bid, an industry source said. 즉 ’160억달러’ 저렴)고 지적했다.
WSJ는 안전성을 중시하는 원자력 발전 시장에서 한국전력의 노후된 기술력이 제너럴 일렉트릭(GE), EDF-아레바, 도시바 등의 신기술과 경쟁하면서 고전할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의 로사톰이나 지멘스 등이 인도와 같은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핵에너지 산업이 미국, 일본, 프랑스만의 시장으로 폐쇄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
이상에서 보는 UEA 원전 수주건은 우리나라의 전투기 구매 프로젝트를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국제시장에서 구입한 전투기는 모두 미국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전투기 구매를 위한 국제입찰을 붙이게 되면 언제나 프랑스의 라팔전투기도 경쟁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리라는 것은 프랑스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제가 아닌 프랑스제 전투기를 구매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입니다.
이번 UEA가 원전건설사로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선택한 것은, 우리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제 전투기가 아닌 프랑스의 라팔전투기를 사겠노라고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덜 노골적인 방식으로...
그럼 UEA가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군사적으로 독립을 시도하고 있는 것인가?
그럴 상황은 전혀 못되는 것이고, 이번 원전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미국의 ‘허용’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은 왜 허용해주었을까?
우선 중동지역의 민감한 반미정서를 고려한 것일 수 있습니다. 중동지역의 민감한 반미정서를 감안하여 한국의 등 뒤에 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컨소시엄에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위 기사가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기술과 핵심부품은 웨스팅하우스(와 또다른 참여사인 도시바)로부터 들여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패턴은 국제 경제에서 항상 나타나는 것입니다. 중국이 미국에게 무역흑자를 너무 많이 낸다고 직접적인 공격대상이 됩니다. 중국은 이에 대해 그 흑자의 상당부분은 한국, 대만, 일본이 가져가는 것이다, 라고 항변합니다. 그 항변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항변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역흑자 중 상당부분은 일본이 가져갑니다.
국제 무역시장의 수출구조를 보면,
일본(핵심부품) -> 한국(중간재) -> 중국(완제품) -> 미국(소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직접 가해지는 공격은 중국이 제 1선에서 맞이하게 되고, 한국은 중국의 등 뒤에 숨을 수 있고, 일본은 중국, 한국의 이중벽 뒤에 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원전건설 프로젝트에서 미국은 중동지역의 민감한 반미정서를 감안하여 한국의 등 뒤에 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부품 제공권은 가져가고,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상당한 리스크가 따르는 허드렛일(완전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건설과 운영 자체는 한국에게 떠넘겼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지정학적인 고려를 하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일본의 군사전략가들은 우리 한반도를 일컬어 대륙으로부터 일본열도의 턱 밑을 향해 들이민 단도와 같다, 고 평합니다. 이처럼 군사전략가들은 지정학에 대해 항상 민감하게 의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도에서 UAE의 지리적 위치를 찾아보면, 이란의 턱 밑을 향해 들이민 단도와 같다, 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미국의 선택은 지정학적으로 이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UAE에, 영국 다음으로 적극적인 미국의 군사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을 들여보낸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
UAE 원전 경비병력도 보내나 경향신문
ㆍ국방부 ‘동맹국 수준 군사협정’ 포함 논란
ㆍ무인정찰기 등 핵심무기 기술 제공 약속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원자력발전 건설공사를 수주하기에 앞서 양국의 군사교류를 동맹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군사교류협력 협정’(MOU)을 체결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전 시설을 위한 경비 병력 제공까지 포함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28일 “
이와 관련해 UAE는 조종사 양성 지원과 마일즈 교전장비를 이용한 교육훈련시스템 구축, 항만방어체계 등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종사 양성은 UAE의 F16 조종사가 한국에서 공군의 첨단 장비를 이용해 훈련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이 부분은 UAE와 한국의 무기체계가 완전히 동일, 즉 양쪽 모두 철저하게 100% 미국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일즈 교육훈련체계는 레이저 빔을 이용한 마일즈 교전장비와 컴퓨터, 통신장비 등을 활용해 실전과 동일한 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훈련체계다. 항만방어체계는 항만 주요 시설에 열상감시장비(TOD)와 열감지센서 등을 설치해 침입자를 확인하는 한편 소형 고속정을 이용해 항만시설을 감시하는 체계이다.
이 외에 우리 정부가 원전 플랜트 공사장을 보호할 수 있는 한국군 경비 병력 또는 이에 버금가는 시설 설치와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전자기펄스(EMP)폭탄, 미사일, 무인정찰기 등과 같은 핵심무기 기술의 이전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포괄적 군사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을 뿐 구체적인 논의사항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원전 시설은 국가의 최고 안전이 요구되는 보안시설”이라며 “아무래도 (UAE의) 자체 경비 역량이 떨어지므로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국방부도 UAE에 군사 관련 분야에서 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사실은 확인했다.
-------------------------------------------------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하고 있는 활동 중의 하나는 이들 나라의 친미성향 정부의 군사역량을 강화시키는 군사교육훈련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군사교육훈련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번에 아랍의 친미동맹국인 UAE에 대한 군사교육훈련을 한국에게 담당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란이 이번에 무사히 넘어갈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란에서 어떤 군사적인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UAE는 지리적으로 이란과 바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바로 불똥이 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아랍의 친미동맹국인 UAE를 군사적으로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국내 여론 때문에 미군의 파견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란에서 어떤 군사적인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우리나라는 위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UAE에 건설하고 있는 ‘원전 플랜트 공사장을 보호할 수 있는 한국군 경비 병력’을 파견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한국 내의 반대여론도 누를 수 있는 상당한 명분이 될 것입니다.
이상의 설명을 통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경제’를 바라볼 때 ‘정치와 절연되어 있는’ 경제로만 바라봐서는 사태를 바로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비상시기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경제가 국제정치에 좌지우지되는 사태들을 아주 본격적으로 목격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기사를 봐도 2010년에 국제 정치 무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
美,예멘서 ‘제3의 對테러 전쟁’ 추진 국민일보
미국이 예멘에서 제3의 대(對)테러 전쟁을 은밀히 추진 중이다.
성탄절 여객기 폭탄테러 기도 사건을 계기로 전선을 예멘으로 확대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에 이어 세 번째다. 미국 내에선 미 행정부의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여론과 지지부진한 ‘제2의 아프간 전쟁’이 될 거라는 우려가 뒤섞여 나온다.
미국 정부가 예멘에서 사실상 알카에다를 상대로 조용하고 은밀한 ‘세 번째 전쟁’을 시작했다고 29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보도했다.
.......
---------------------------------
미국이 중동에 대한 개입을 점차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지금쯤이면 중동 각국의 지도자들이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깨닫지 않았을까요? ‘세 번째’인 예멘에 뒤이어 이란에서 ‘네 번째’로 어떤 사태가 터져야 깨닫게 되려나요?
일전에 중동 각국의 지도자들까지 참여하여 원유 결제에서 달러를 배제하려는 비밀회담이 진행중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보도를 계기로 달러 약세가 더욱 탄력을 받으며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농담 아니면 역정보에 불과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사태가 분명해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이 예멘에서 추진 중인 제3의 대(對)테러 전쟁이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안 미칠까요?
달러화 환율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달러 기축통화체제가 정치와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일까요?
현재 지구 상의 어떤 다른 나라가 달러화 기축통화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때의 도전이란 정치를 포함하는 것임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경제는 정치로부터 절연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인사의 글:
크리스마스 연휴는 푹 쉬셨는지요?
꽤 오랫만에 글을 올리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연말이다 보니 차분하게 글을 쓰기가 쉽지 않네요.
남은 이틀 동안 다사다난했던 2009년 한 해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마무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