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세일러님의 경제시각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생겨났나 3 (09.08.26)

유랑검 2009. 9. 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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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생겨났나 1

12.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생겨났나 2

13.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생겨났나 3

 

 

 

산업혁명 시기에 유럽 각국은 대규모의 자본 동원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자본을 순수금본위제 하에서는 적시에 공급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진행 경과를 보면, 은행 시스템(신용 창조 시스템), 국채와 중앙은행 시스템을 일찍 도입하고 정착시킨 영국이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됩니다. (당대의 영국은 금본위제를 이탈한 것은 아니지만 절반쯤은 신용(통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영국이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다른 요인들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국이던 스페인,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당대 영국의 인구는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1801년 영국 인구는 1100만명, 프랑스는 2700만명 이상), 1600년까지도 영국은 대륙국가들로부터 산업기술 수입국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즉 원래부터 영국의 산업기술이 앞서가던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통화 시스템 측면(곧 금융제도 측면)에서 영국은 아직 순수금본위제에 보다 충실한 상태에 머물러 있던 대륙의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또한 영국을 프랑스와 대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는 18세기 초 존 로에 의해 그린백 시스템이 시도되었고, 18세기말 혁명정부에 의해 아시냐 지폐가 도입됨으로써 다시 한 번 그린백 시스템을 구사합니다.

린백 시스템 도입 초기에는 기적이 일어난 듯 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자와 침체의 수렁에 빠졌던 경제가 일거에 호황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나 결과는 두 번 다 準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끝났습니다. 그로 인해 금융시스템 자체가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초래된 두 번의 인플레이션이 가져온 타격이, 열강 간의 발전 경쟁에서 프랑스를 뒤처지게 만들었다는 것이 프랑스 역사가들 스스로의 진단입니다(킨들버거가 경제강대국 흥망사에서 이런 관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통화 시스템 간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금 본위제는 산업혁명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을 적시에 동원할 수 없었다. 이 측면에서는 신용(통화) 시스템과 그린백 시스템이 더 능률적이다.

 

그 다음으로 신용(통화) 시스템과 그린백 시스템 양자를 비교해보면,

통화의 무한창출이 가능한 그린백 시스템은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못했다(국가는 필요한 곳에서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 자체가 붕괴해버렸고 국가의 발전 자체가 정체되었다.

 

반면 시스템 구조적으로 통화의 무한창출이 불가능한 신용(통화) 시스템은 시장 스스로가 통화의 팽창을 거부했다. 그 결과는 소규모 금융위기다. 그 당시에는 시장참여자들이 고통스럽게 여겼지만 긴 역사라는 안목으로 보면, 소규모 금융위기가 터져서 더 이상의 팽창을 막아주고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막아준 것이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 만을 요약 제시하면 위와 같이 되겠습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던 실제 사례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미시시피 버블(18세기초 프랑스) >

 

존 로와 미시시피 버블은 금융史에서 유명한 사례입니다.

이 케이스가 근대 이후의 경제史에서 그린백 시스템의 최초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린백 시스템에서 본원통화인 지폐의 창출은 전적으로 국가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대의 프랑스에서 국가의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당시의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섭정이던 오를레앙 공 개인의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오를레앙 공은 시스템의 설계자인 존 로의 반대를 무시하고 재정수요(또는 자신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권은행으로 설립한 방크로얄로 하여금 지폐를 원하는 만큼 찍어내도록 했습니다.

 

이 무책임한 통화량의 팽창은 당연한 결과로 인플레이션을 불러왔습니다. 1719년 초에 300리브르이던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는 년말에는 2만 리브르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상승률 약 67).

 

그리고 금융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가져왔습니다.

(코스닥 버블을 경험한 현대의 우리는 이 67배 상승이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로마 말기를 제외하고 16세기까지 유럽에는 의미있는 규모의 인플레이션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는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남대서양(South Sea) 주식회사 버블이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사태의 전개가 국가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통상적인 수준(단어의 어폐가 좀 있습니다)의 주식시장 버블붕괴 정도(100파운드의 주가가 1000파운드로 10배 상승)에 그쳤고, 금융시스템의 일대 붕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미시시피 버블로 인해 프랑스인들은 은행(방크)’이라는 단어 자체를 끔찍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발권은행으로 설립한 방크로얄에 대한 악몽같은 기억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오늘날도 은행을 은행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 한국인들에게 IMF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와 유사합니다.

이를 보면 미시시피 버블이 프랑스인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인 상처를 남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미시시피 버블을 악몽으로 만들어버린 당사자는 사실 오를레앙 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존 로는 상당히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비운의 금융 천재라고 할까요...

당대 프랑스의 국가 의사결정을 좌우했던 오를레앙 공은 그린백 시스템 도입이 가져온 마법과 같은 결과(경기침체로부터의 탈출과 재정문제의 해결)에 만족하고 필요한 곳에서 자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어느 국가경제의 화폐 제도를 그린백 시스템으로 운영하려면 국가의 책임성과 경제운용 능력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냐 지폐는 18세기말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정부가 부족한 재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행했던 지폐입니다.

결과는 미시시피 버블과 대동소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린백 시스템에서 조차 사실 영구적인팽창은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통화 시스템에 비해서 더욱 크게 팽창할 수 있지만 결국 그 끝은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 정도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링컨 정부의 그린백, 독일 제3제국, 오늘날의 중국>

 

링컨 정부의 경우는 그린백 시스템이라는 개념 자체를 탄생시킨 케이스입니다.

엘렌 브라운이 달러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엘렌 브라운의 달러는 그린백 시스템을 영국 시스템에 대비되는 미국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이 미국 시스템의 장점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달러를 읽을 때는 브라운이 상대적으로 그린백 시스템에 우호적인 양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4년 동안 전개된 남북전쟁 기간 동안 물가수준은 대략 125% 정도 상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시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물가 상승은 분명 매우 양호한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링컨 정부에서 그린백 도입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엘렌 브라운이 달러에서 세밀하게 소개하지 않은 사실이 더 있습니다.

링컨 정부는 그린백 만으로 전쟁 비용을 조달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미국에는 제이 쿡이라는 슈퍼세일즈맨이 등장합니다. 제이 쿡은 미국 최초로 공채를 직접 국민들에게 파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매우, 매우 성공적으로 공채 매각을 진행시켰고 전비의 상당부분이 이 공채 매각으로 조달됩니다. 실제로 제이 쿡은 사실상 남북전쟁의 재정가였다는 호칭을 얻었습니다.

 

제이 쿡의 활약이 없었다면, 그래서 링컨 정부가 그린백을 더 많이 발행했다면 양상이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린백이 본격 유통된 기간이 4년으로 짧았다는 사실, 당시 그린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결과 그린백 발행 자체가 매우 억제되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엘렌 브라운은 그린백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운용되었던 사례로 독일 제 3제국을 말합니다. 당시 히틀러는 중앙은행인 라이히스 방크로 하여금 지폐를 그냥 찍어내도록 했습니다.

 

브라운은 독일 제3제국이 그린백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전비를 조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점, 이 독일을 상대로 전유럽과 러시아, 미국이 모두 달려들어서야 간신히 독일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그린백 시스템의 제도로서의 우수성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역시 이 경우에도 브라운이 얘기하지 않은 사항이 있습니다.

 

히틀러의 제3제국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결과 아무도 수중에 돈을 들고 있으려 하지 않았고, 돈은 모두 실물에 투자되었습니다. 그 결과 당대 독일의 산업은 모두 최신의 공장과 생산설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즉 독일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망가지기도 했지만,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그 덕분에 최신 설비를 갖추게 된 측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이 전쟁배상금을 치를 수 있도록 제공된 차관 중 엄청난 액수가 실제 배상금으로 지불되지 않고 독일 국내에서 사용되었습니다(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음모론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결국 제3제국의 전비는 그린백만으로 조달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린백으로 인한 통화팽창이 그리 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2차 대전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개전 초기에 기계화사단에 의한 전격전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에 연합군측이 얼떨결에 밀린 측면이 강합니다. 사실 독일측도 나타난 결과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군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 독일군 참모본부는 적의 유인작전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고 스스로 진격을 멈추곤 했을 정도입니다.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맹신하고 있었는데 독일이 이를 우회해버린 점도 작용했습니다.

개전 초기를 제외하고 보면 2차 대전에서 독일의 우월성(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은 그렇게 대단하게 평가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여러가지 요소에도 불구하고 독일 제3제국이 그린백 시스템을 운용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우려할 만큼 나타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시 운용 기간이 짧았습니다. 긴 시간을 두고 운용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 것입니다.

 

엘렌 브라운은 오늘날의 중국이 사실상 그린백 시스템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제기합니다. 저는 이렇게 보는 관점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에게 돈이 제공되고 있는데, 형식상으로는 대출이지만 은행으로서는 사실상 받을 생각을 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형식상으로는 부채를 수반하는 채무화폐 시스템이지만 사실상의 운용을 보면 그린백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돈이 기업들에게 제공되고 기업들 자신도 이를 갚지 않아도 된다(? 사실상 그렇다는 말입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신들의 생산물을 원가 이하로 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중국산 제품을 보면서 아무리 중국의 인건비가 싸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 가격에 팔 수 있는 것일까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엘렌 브라운의 추측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설명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은행들에 대해 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정말 이와 같아서, 오늘날 중국의 경제기적이 통화 팽창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라면, 아직까지는 버텨내고 있지만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될 수도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린백 시스템은 무조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엘렌 브라운은 달러에서 진성어음의 원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성어음의 원리란, 국가가 그린백 지폐를 자의적으로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가치의 물건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에만 사용한다면, 그린백 지폐는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린백 지폐의 추가발행이 그에 상응하는 가치의 물건과 서비스의 생산에 연동되어 있으니 수요(통화의 추가발행으로 인해 생겨나는 수요)와 공급(상응하는 가치의 물건과 서비스의 생산)이 같이 증가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엘렌 브라운은 그린백 시스템을 도입하되 국가가 자의적으로 그린백 지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응하는 가치의 생산과 연동되도록 제한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린백 지폐의 발행이 철저하게 동등한 가치의 생산과 맞물려서만 발행되게 제한된다면 물론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일이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그린백 시스템은 제도 자체가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가 여부는 국가(공동체의 총화로서의 국가)가 장기간 성공적으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하이퍼인플레이션 케이스입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기본적으로 신용(통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제가 신용(통화) 시스템에서는 무한팽창이 불가능하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방지된다고 말씀드린 것과 모순됩니다.

 

저는 앞에서 신용(통화) 시스템에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아주 중요하고, 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면 사실상 그린백 시스템과 유사해진다고 말씀드린 사항과 관련되는 것인데,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신용(통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어떻게 통화가 그토록 팽창할 수 있었을까요?

 

신용(통화) 시스템에서는 반드시 모든 돈이 을 수반해야만 발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본원통화도 을 수반해야만 발행될 수 있습니다. 이 원칙은 금융위기 시에도 관철됩니다.

 

그리고 앞에서 심각한 통화 수축기라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영리기업을 대상으로 해서도 여신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의 적격 증권을 인수함으로써 을 수반해야 한다는 신용(통화) 시스템의 원칙은 철저하게 관철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중앙은행이 받아들이는 모든 증권은 적격자산이어야 한다, 이 자산이 적격에 미달할 경우 중앙은행은 이의 인수를 거부하는 것이 신용(통화) 시스템 하에서의 법률이 요구하는 중앙은행의 의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앙은행이 비적격 증권을 거부할 수 있으려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중앙은행인 라이히스 방크(3제국의 중앙은행으로 이어집니다)의 독립성이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라이히스 방크는 금융위기 시에 영리기업에게도 여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제도를 통해 대기업들의 회사채를 인수하고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시중금리가 50% 이상일 때 대기업들이 5%의 이자로 발행하는 회사채를 인수해 주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시중금리가 계속 뛰니 마지못해 인수하는 회사채 금리도 7, 8%로 뛰었고, 최종적으로는 18% 금리의 회사채를 인수했지만, 이때쯤 시중의 일반 개인들이 물어야 했던 금리는 300% 였습니다.

 

당시 라이히스 방크의 행위는 국가 체제를 뒤흔드는 범죄행위입니다.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 라이히스 방크가 인수했던 대기업의 회사채는 전혀 적격증권이 못되는 것입니다. 시중 실세금리가 50%, 300%였으니까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었다면 당연히 그 인수를 거부했을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이어서 자신의 영리목적 하에서 움직인다면 당연히 거부할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대 바이마르 공화국을 관찰한 외국인들의 저서를 보면,

바이마르 공화국이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지만 몇 몇 대기업이 사실상 국가 자체를 지배하는 막장국가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당시 라이히스 방크의 행위는, 대기업들이 다른 기업이나 알짜 자산을 사들일 수 있도록 돈을 대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이렇게 공급받은 돈으로 독일 전체를 다 사들일 기세로 거의 모든 자산을 사들이고 있었습니다.

 

리하르트 베르너는 금융의 역습, 과거로부터 미래를 읽다라는 책에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베르너는 당시 라이히스 방크의 총재가 남긴 기록을 전거로 삼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위 책에 따르면 당대의 라이히스 방크는 1차 대전 전승국들이 주도하여 시스템을 만들었고 라이히스 방크의 이사진은 대부분 외국인인데, 모두 금융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은 독일 마르크화에 대한 투기를 벌였고, 투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르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는 것입니다.

 

베르너가 인용한 라이히스 방크 총재의 기록은 그 총재가 자신의 과오를 숨기고 싶어하는 동기가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외국인들이 대대적인 투기를 벌이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영국의 케인즈도 이 투기에 가담했습니다. 마르크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방향성은 맞췄는데, 너무 거액을 빌려 투자했다가 중간의 반등이라는 변동성에 걸려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어느 쪽 주장이 보다 진실에 가까운지는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두 양상이 모두 뒤섞여서 빚어진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바이마르 공화국 사례와 관련하여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당시는 기본적으로 신용(통화) 시스템이긴 했지만, 1차 대전 패전국가라는 상황과 맞물려 사실상 제도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됨으로써 사실상 그린백 시스템과 같이 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다르게 말하면, 신용(통화) 시스템도 제대로 운용되지 않으면, 즉 시스템 스스로 무한팽창은 억제된다는 시스템의 특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정도로 시스템의 운용이 망가진다면, 역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막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견해는 이 글의 말미에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제시한 사례를 제외하고 다른 사례들, 예를 들어 중남미 각국에서 나타났던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들은 통화의 팽창으로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환위기 상황과 국제적인 압력이 맞물리면서 중남미 각국의 화폐 가치 자체가 급락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부유층들이 부를 해외로 도피시키면서 화폐 가치는 더욱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통화 팽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는 성격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들 국가들은 물론 신용(통화) 시스템을 기반으로 경제를 운용했습니다만 인플레이션의 성격 자체가 통화의 팽창으로 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신용(통화) 시스템과 관련한 저의 주장, 즉 시스템 특성으로 인해 무한팽창이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짐바브웨가 있는데,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두 가지 요인이 뒤섞여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짐바브웨 국민들이 지폐더미를 들고 다니는 모습, 지폐의 명목금액이 천문학적으로 뛰는 사진들을 봤는데, 그 정도가 되려면 통화의 팽창이 반드시 을 수반해야 한다고 하는 신용(통화) 시스템의 원칙이 폐기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서구 국가들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짐바브웨의 화폐가치 자체가 떨어지고 짐바브웨 내의 부유층들의 자산 빼돌리기도 존재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제시한 사례들을 돌아보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는 분명 신용(통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용(통화) 시스템도, 시스템 스스로 무한팽창이 억제된다는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정도로 시스템의 운용 자체가 망가진다면, 역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신용(통화) 시스템이 제대로 운용된다면, 이라는 전제를 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린백 시스템의 경우도 예를 들어 엘렌 브라운이 제시하는 진성어음의 원리에 따라 통화의 팽창이 억제된다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어느 시스템이든 시스템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의 미국,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우처럼 시스템 자체가 막장으로 운용될 수 있을까?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우는 국민 전체를 속인 일대 사기극이 벌어졌던 케이스입니다. 1차 대전 패전국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가능했다고 보입니다.

저는 오늘날의 미국,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국가시스템이 그토록 무너질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러한 저의 생각 자체에 동의가 안되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나중에 다시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 현상 중에 통화팽창으로 인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징조는 전혀 없음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통화팽창으로 인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으려면, 소비자들의 명목소득이 늘어야 합니다. 소비자들의 명목소득은 늘어나지만 물가상승률이 훨씬 더 높은 것이 하이퍼인플레이션입니다. 소비자들의 명목소득이 줄어들고 있는데 어떻게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자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고 해도 자산투자는 실패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역설현상에 대해서는 예전 글에 몇 번 쓴 적이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신용(통화) 시스템에서는 영구적인 팽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어제 저녁때 작성해서 올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만 쓰다보니 길어져서 늦어졌습니다. 혹시 기다린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저의 생각이 한 번 정리되기도 했습니다.

 

다음 번 쓸 글은 통화 시스템의 특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에 대한 평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 글은 그리 긴 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 글부터는 왜 붕괴가 지금 임박했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정리하는 글이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긴 글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