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와 양털깎기 (09.04.26)
1. 진실의 순간 (Moment of Truth)
2. 돈이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지탱되나? (진실의 순간 2)
3. 미국은 과연 몰락하고 있나? (미국의 몰락과 화폐환상)
4. 미국 패권의 선택
5. 국제통화 체제와 트리핀의 딜레마
6. 달러와 양털깎기
7. 미국 패권은 어디까지 원할까?
저는 앞 글에서 미국이 트리핀의 딜레마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웠을까 질문을 던졌습니다.
미국이 채택한 전략은 양털깎기라고 봅니다.
기축통화란 전 세계의 유동성입니다.
미국의 화폐인 달러가 기축통화이니 결국 미국은 전 세계의 유동성 공급을 자기 뜻에 따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양털깎기가 가능한 전제조건이 성립됩니다.
유동성 공급을 급격하게 조절함으로써 양털깎기를 하려면 격변기에도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국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자칫 어설프게 양털깎기를 시도하다 격변의 와중에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게 되는 날에는 바로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드린 대로 미국은 군사력은 기본이고, 원유태환, 식량태환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충분히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팍스 브리타니카 시절 영국의 국력 정도로는 뒷받침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깨끗이 두 손 들고 기축통화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 국력과 그동안 다져온 여건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양털깎기를 위해서는 급격한 유동성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미국은 세계의 유동성 공급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요?
관련된 저의 글:
윗 글에서 소개해드린 동아시아 3국이 미국의 무역적자에 의존하는 구조를 가만히 살펴보면, 미국이 무역적자를 ‘감당해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한 가지는, 중국은 전세계 주요 국가를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고 있고, 앞으로도 흑자를 내려고만 한다는 점입니다. 적자를 기꺼이 감수해줄 생각이 없다면, 기축통화가 되기 어렵습니다)
트리핀 교수의 예언대로 미국이 무역적자를 감당해줌으로써 세계 경제에 유동성이 넉넉히 공급이 되고 세계 경제가 호황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트리핀의 딜레마가 작용하여 거꾸로 달러가치의 하락을 의심받게 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은 호시탐탐 달러로부터 탈출할 타이밍만 보는 상태입니다.
독일 국채가 미국 국채보다 더 안전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미국의 전통적 맹방으로 인식되는 우리나라까지 외환보유의 다변화를 천명할 정도라면 말 다한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해 미국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생각할 법도 합니다.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국제유동성 공급은 부족했을 것이고, 세계경제는 크게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유동성 부족으로 완만한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상태였다면, 우리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4마리 용의 급성장이나, 중국을 포함한 브릭스의 급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전세계 유동성의 공급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유동성 공급을 줄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면 세계 경제에 유동성 공급이 줄어들게 됩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통해 국제 유동성이 공급되는 것인데, 지난 수년간 미국에서 자산시장의 버블이 형성되면서 이로 인한 자산효과로 과소비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 무역적자가 급격하게 커졌고 이는 국제유동성의 지나친 ‘과잉’ 공급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다 급작스런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로 인해 소비의 급격한 감소가 생겼고, 이는 그대로 국제유동성의 급격한 수축을 초래했습니다.
관련 글:
유동성의 축소가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급격하게 일어나게 되면 디플레이션, 더 나아가서는 공황이 찾아올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지난 수년간 미국은 양털 수확을 최대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다고 저는 봅니다.
IT 버블이 붕괴되었던 2000년 이후부터는 세계 경제가 쉬어가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었다고 봅니다. 큰 버블을 겪은 뒤이므로 그 시점부터 한동안 완만한 디플레이션을 거쳐갔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랬다면 상대적으로 큰 충격이 없는 완만한 디플레이션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02년에 바닥을 찍고 세계 경제는 다시 상승을 시작하여 전 세계에 걸쳐 유례없는 일대 호황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추진력은 미국의 자산 버블에 기반한 과소비였습니다. 이 과정들이 그리 자연스러운 경제의 흐름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치밀한 준비를 끝내고 나서, 갑자기 돈줄을 확 조여버리는 것, 이게 바로 전형적인 양털깎기의 수법입니다.
전 세계가 미국이 쳐놓은 매트릭스에 걸려들었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보유 외환의 다변화를 꾀하겠노라 나섰을 때, 아마 미국은 속으로 서운한 생각과 동시에 비웃음을 띠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겉으로 어떤 모습을 연출해서 보여주든, 속으로는 그래? 어디 두고 보지 뭐… 정도가 미국의 속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미국이 진실의 순간을 강요(국제 유동성을 확 줄여버림)하니 전 세계가 달러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국면은 전세계가 양털깎기를 당할 상황에 직면했음을 슬슬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봅니다.
그동안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하여,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전세계를 상대로 시뇨리지를 누리면서 경제력 약화를 커버해왔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의 쇠퇴기에 귀금속 화폐의 함량을 줄여가던 것과 유사합니다.
로마는 유동성 공급을 계속 늘림으로써 인플레이션을 확대재생산하는 쪽으로만 나아갔습니다.
반면 미국은 그동안 유동성 공급을 늘려왔고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촉발되었던 것은 동일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치밀하게 때를 준비했고, 때가 됐다고 보고 이제 급격하게 유동성을 조이고 있습니다.
양털깎기를 통해 세계 각국의 부를 수탈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무역적자를 통해 세계 각국에 이전시켜준 부를 다시 거둬가려 하는 것입니다.
중동 각국은 유전에 설비투자를 과도하게 진행한 상태입니다.
경제적으로 욱일승천하던 중국도 생산설비가 과잉투자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미국발 유동성의 과잉 공급으로 인해 부동산과 주식 버블이 유발되었고, 기업체들도 과잉투자를 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선업체들도 그렇고, 지난 수년간의 호황기에 차입을 통한 인수합병으로 그룹의 규모를 키웠던 대기업들이 그렇습니다.
전세계의 상황이 거의 비슷합니다. 앞서 인도 타타그룹의 사례를 소개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동성의 공급을 급격하게 조절함으로써 양털깎기를 하려면 격변기에도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국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파운드화의 경우는 이러한 뒷받침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스스로 기축통화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달러화의 경우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국력은 당대의 영국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것입니다. 현재도 미국이 쇠퇴했다고는 하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로 여전히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사력은 여전히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의사가 곧 과반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스스로의 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적절히 활용할 줄 압니다.
지난 부시정부 때 미국의 이라크 침략 당시를 되돌아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전세계가 미국을 맹비난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라크를 샅샅이 뒤져도 대량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무런 근거없는 침략일 뿐이었습니다. 합리화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각국의 태도는 변해갔습니다. 유럽 각국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세계 각국은 미국의 뜻이 과반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반발해봐야 자국에 손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각국은 이해관계가 서로 갈리기 때문에 일치단결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누구도 이라크 침략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미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미국의 경제 침체가 계속 진행이 되었다면 미국의 국력은 계속 위축되고, 결국 군비도 감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제국은 서서히 황혼을 맞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 침체가 서서히 진행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주 급격하게 진행되면 얘기가 달라지니 아이러니입니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치밀하게 준비해온 결과입니다.
미국이 아직 힘이 충분히 남아 있을 때, 패권을 다시 강화하기 위해 친위쿠데타, 예방전쟁을 벌인 것이 작금의 세계 경제위기라고 봅니다.
이번에 미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아주 풍성하게 수확을 거둘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부실자산을 헐값에 인수하여 미국의 부는 크게 증대되고, 한동안 전세계가 다시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미국 패권이 강화되는 결과로 끝날 것이라고 봅니다.
<제 글을 처음부터 전부 다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한 안내>
저의 글들은 맨 처음 글들부터 모두 서로 다 연관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요즘 쓰고 있는 글들은, 앞 글들의 내용을 모르는 채 읽는 분들에게는 오해를 초래할 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는 아주 근본적인 원리가 문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해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근본원리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근거없는 '통념', ‘선입견’ 을 내려놓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 경제위기를 제대로 꿰뚫어 보기 위해서 익혀야 할 근본원리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을 요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지금 진행되는 경제위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체의 모습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제 글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꼭 처음부터 다 읽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의 글들은 오히려 혼란만 초래하고 글을 읽는 분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