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의 선택 (09.04.23)
1. 진실의 순간 (Moment of Truth)
2. 돈이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지탱되나? (진실의 순간 2)
3. 미국은 과연 몰락하고 있나? (미국의 몰락과 화폐환상)
4. 미국 패권의 선택
5. 미국 패권은 어디까지 원할까?
미국 패권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저의 생각은 사실 지금까지의 글들을 통해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지난 글들:
미국 패권과 관련된 내용을 처음 올린 시점을 돌아보니 작년말이군요. 그 뒤로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계속해서 경제상황, 시장의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저의 생각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저는 미국 패권이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30년대 대공황의 정도를 넘어설 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이후 자주 한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는 저 자신을 봅니다. 원래는 안 그랬습니다.
평상(平常), 통상(通常)과 비상(非常)의 대립 같은 것들입니다.
非常도 그냥 非常이 아닙니다.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라는 말도 들리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위기'라는 말도 들립니다.
미증유란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이고,
전대미문이란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이 아닌 그린스펀은 대신에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위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블랙스완의 저자 탈레브는 ‘검은 백조’라는 단어에 의미를 압축하여 넣었습니다.
이상의 말들이 갖는 의미는 결국 대공황을 넘어서는 위기가 닥친다는 얘기라고 봅니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발생을 제대로 예측해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소로스와 루비니 교수입니다.
현재 이 두사람은 어떤 말들을 하고 있을까요?
관련기사: 소로스 "美, 장기침체 국면"
내용을 보면, 미국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일본식 L자형 불황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소로스의 예측력은 현재도 정확히 발휘되고 있는 중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관련기사: 美금융위기, 서브프라임에서 프라임發 위기로 진화
그 동안 소로스는 수차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에 대해 경고해왔습니다. 위 기사를 보면 미국에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붕괴의 신호탄이 올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언론기사들은 증시의 랠리에 대해 흥분섞인 기사들을 내보냄으로써 개미투자자들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루비니 교수는 무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관련기사: 루비니 "최근 증시는 '봉'들의 랠리"
금융위기 발발 직후 루비니 교수를 신처럼 떠받들던 언론과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최근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에코버블의 물결을 타고 루비니 교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비니 교수는 초지일관 흔들림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 루비니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들도 남겼습니다.
"(현재 증시를) 여전히 약세장으로 보고 있다"
"경기 회복은 예상보다 길어질 것"
"기업 실적은 놀랄만큼 하락할 것이며 많은 은행들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것"
저는 루비니 교수의 예측이 계속 맞아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크루그먼 교수도 일맥상통하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美 경제 아직 터널 지나지 않아 섣부른 낙관 금물 일관된 정책을"
“1930년대 대공황 때도 경제가 잠시 휴지기를 가진 뒤 다시 절벽으로 곤두박질쳤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기 하강기에 성급하게 낙관적 전망을 내놓아 경기회복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
“경기회복이 알을 깨고 나와 현실화하기 전까지는 방심해선 안 된다” (회복 조짐을 보이는 정도만 가지고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되고 확실하게 완전히 돌아선 것을 확인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
등등의 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더욱 분명하게 말합니다.
관련기사: "대공황보다 더 큰 위기…극복 전망이 안 보인다"
윗사람들보다는 지명도가 떨어지겠지만, 업계에서는 유명한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인 마이크 메이요는 좀 더 구체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美은행 대출손실 대공황때보다 커질 것"
기사 내용 중에서 “앞으로 10년 이상 리스크 증가 추세가 지속될 것이므로 은행 위기의 해결은 시간이 걸릴 것” 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패권의 입장에서는,
이 시점에서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 이익이 아니라, 더 악화시켜(?) 공황을 거쳐가는 것이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패권에 대한 욕구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관련된 저의 글:
미국 패권세력의 입장은 미국 시민들의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패권이 몰락할 경우 러시아처럼 수술(?)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좀 어렵더라도 공황을 거쳐감으로써 패권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미국 시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택’이나 ‘의도’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미국 패권의 선택이 트리거 해피(trigger-happy)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든, 미필적 고의든, 능동적 고의든, 공황 쪽으로 갈 것이다, 현재도 그쪽으로 계속 가고 있다, 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저의 글: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 에서,
로마 제국과 오늘날의 미국을 비교해보면, 그 양상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로마제국의 몰락을 바탕으로 미국 패권의 몰락을 얘기하는 학자들이 많다는 점에 대해 말씀드렸고, 거꾸로 학자 한 사람이 아는 걸 미국 패권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모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벌써 80년 이상 전세계를 자신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는 미국 패권세력들이 이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고,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았다고 본다면 그 쪽이 비합리적인 가정일 것입니다.
제국 로마가 멸망한 원인은 인플레 쪽으로만 계속 갔기 때문입니다.
제국 로마는 ‘양털깎기’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제국의 국고가 비니 자꾸자꾸 통화량을 증발하기만 했습니다. 전략으로서는 하책입니다.
그럼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이 없습니다. 제국은 멸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패권세력은 로마사를 당연히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에 따른 대비책도 세워두었을 것입니다.
우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천동설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사태를 바로 볼 수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인정하기 싫더라도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실’이 보기 싫고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라도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와 내 가족이, 더 나아가서는 이 나라가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패권세력의 전략가 입장에 서서 보아야 합니다.
내가 미국 패권세력의 전략가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와 같은 입장에 서서 보면 답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공황을 거쳐가면 됩니다.
제국 로마가 의도적으로 통화량을 줄임으로써 공황을 거쳐갔다면 멸망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품도 뺄 수 있고, 양털깎기를 통해 로마 시민들의 부를 수탈하여 황제의 곳간을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관련된 저의 글: 패권 국가 미국의 고민
미국 패권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따져보면 결국 대다수 개인들의 고민과 똑같습니다.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돈 쓸 곳은 많은데, 예전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하니 돈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국채를 발행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떠안김으로써 해결해왔습니다.
깡패들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에게 보호세, 자릿세를 뜯는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형식상 채권발행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지만, 언제 갚을지, 갚을지 말지 자체도 모르는 것이고, 계속 빌리는 금액이 늘어나기만 했으니 뜯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주먹을 앞세운 집단이 보호세를 뜯어내는 행위는, 법질서가 확립이 안된 공간에서는 늘상 일어났던 일입니다. 국제사회에는 법질서가 없습니다.
미국의 행동을 보면, 노골적으로 주먹을 들이대는 대신 금융기법을 사용하여 덜 노골적으로 보이게 적절히 포장해왔다는 점만 다릅니다.
그리고 장사 잘되는 집(무역흑자국들)에서 더 많이 뜯어냈으니 나름 그쪽 세계에선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이와 같은 방식이 슬슬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07년말 기준으로만 봐도, 미국의 국채(빚)는 9조 2300억달러입니다. 그 이자만 한 해에 4300억 달러입니다. 미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 항목 중 의료보험과 국방비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것이 국채에 대한 이자 지출입니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을 계속하기는 곤란해져버렸습니다.
이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 미국 국채의 가치 자체를 의심받는 지경에 몰렸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금융위기가 벌어지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거에 해결되었습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해결되었습니다.
국채의 이자율이 제로에 근접하고 있어 국채 이자 부담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달러인덱스가 올라가고 미국 국채로 다시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윤전기를 돌려 달러를 찍어내고 있기도 합니다.
달러를 찍어내도 문제가 안 생기는 상황을 만들어놓았으니, 이제는 국채로 돈이 안 몰려들어도 달러 찍어내서 인수하면 그만입니다.
평상시라면, 윤전기를 돌려 달러를 찍어내면 통화의 가치하락으로 당장 기축통화체제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이 조성됨으로써 달러를 찍어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현재의 경제위기는 미국 패권세력들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친위쿠데타, 예방전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의 경제위기로 미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풍성한 양털깎기도 가능할 것입니다.
관련기사: 부실자산인수戰 막올랐다
TV에서는 연일 미국이 어렵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지금 전세계에서 달러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당연히 윤전기에서 찍어낼 수 있는 미국입니다.
위 기사에서 소개되고 있듯, 골드만삭스가 조성한 55억달러는 부실자산인수 펀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앞으로 전세계에서 생겨날 부실자산을 누가 거둬갈지는 뻔합니다.
일전에 신문기사를 보니,
인도의 국민기업이라 할 수 있는 타타그룹의 대주주인 타타일가가 보유지분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어려움을 넘기고자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앞으로도 위기 상황이 지속된다면, 타타일가는 앞으로 은행대출을 상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타타그룹의 소유권이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정이 비슷할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부실자산들은 헐값에 미국 자본이 거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유가격이 140불을 넘어서는 등 랠리를 보이니, 중동지역에서는 대대적으로 유전에 대한 설비 투자에 나섰습니다.
대규모 설비투자는 현찰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규모 금융을 수반합니다.
이번에 망해나갈 것으로 봅니다.
그럼 결국 미국 중심의 오일 메이저들이 거둬갈 것으로 봅니다. 그 동안 오일 메이저들의 시장 점유율이 낮아졌었는데 이번 위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시장점유율이 급증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결국 경제위기가 지나고 나면 전 세계의 부 중 미국이 차지하는 지분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욱일승천하던 중국은 기세는 꺾여 있을 것이라 봅니다.
이상에서 소개한 시나리오는 미국 패권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현 시점에서 경기가 살아나면 곤란해집니다.
일거에 해결했던 문제들이 모두 원위치로 돌아갑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상황이 정반대가 됩니다.
현재 에코버블 국면이 진행되면서 미국 패권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중입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시면 미국 주식시장이 살아나니 달러 인덱스(달러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S&P 500 차트>
<달러 인덱스 차트>
미국 패권 입장에서 곤란한 상황이 계속 진행될까요?
지금이 베어마켓 랠리가 아니라 정말 경기가 바닥을 찍고 앞으로 살아난다면 미국 패권세력은 정말 곤란해집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은 생존을 위해 국채를 엄청나게 발행해야 합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주식시장이 살아나면, 안전자산으로서 선호되는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럼 미국 패권은 재원조달이 불가능해지니 망하게 됩니다.
결국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미국 주식시장이 살아나면 미국 패권은 망하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옵니다.
반대로 미국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공황이 닥친다면 미국 패권은 더욱 강해집니다.
언뜻 보면 아이러니지만 분명한 현실, 직시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그럼 미국 패권세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제가 미국 패권세력의 전략가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갈 길은 정해져 있다고 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세계 패권에 대한 욕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인식 여하에 따라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