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과 조선왕 독살사건 (09.01.06)
'조선왕 독살사건'(
사실 여부를 떠나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왕’이 우리의 통념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상으로는 그 아래에 있는 신하들의 세력과 타협해야 했으며, 어떤 때는 치열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 투쟁의 와중에 독살사건이 벌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종신직이며, 자신의 혈육에게 왕위를 세습시킬 수 있었던 조선왕이 이 지경이라면, 오늘날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임기제 대통령이 가진 권력이란 것이, 매우 취약한 것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제도적인 권력과 보이지 않는 권력의 관계는 현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의 대통령은 메드베데프지만, 푸틴이 계속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바입니다.
등소평이 중국을 통치하던 시절, 등소평이 맡았던 공식 직책이란 ‘중국 브릿지(카드게임)협회장’ 뿐이었습니다. 중국을 통치하는 권력이란 것이, 공식적인 직책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광요는 여전히 싱가폴을 통치합니다.
우리 나라는 어떨까요?
지난 정부 시절, 외무부 북미국의 문건 하나가 흘러나오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 내용은 ‘지금 대통령은 반미주의자이니 그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료들이 보기에 정권이란, 별로 길지 않은 임기만 끝나면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적절한 구실을 대면서 말을 듣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금방 지나갑니다. 바로 레임덕 현상(권력의 누수현상)입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는, 대통령제 보다 더욱 자주 정권이 바뀝니다. 수상의 평균 재임기간은 훨씬 짧습니다. 일본은 관료들이 통치하는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기업 그룹의 오너는 실제 지분이 얼마 안됩니다. 그룹 경영과 관련하여 어떤 공식적인 직책도 맡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문제없이 그룹을 통치합니다.
회사의 직책과 상관없이 실세가 따로 있는 경우들이 꽤 됩니다. ‘바지 사장’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제도적인 권력과 보이지 않는 권력의 관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도적인 권력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이러한 관계는 국가 단위가 되면 오히려 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관계가 더 복잡해지고 은폐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사실상의 권력관계는 오히려 다를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푸틴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올리가르히들과 힘든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가즈프롬과도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푸틴이 이 권력투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밀경찰(KGB) 출신으로 그 조직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조직의 도움으로 비민주적인 대응(?)을 감행할 수 있었기에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권력을 장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민주화된 나라일수록 임기제 대통령이 권력을 컨트롤하기 어렵습니다. 제도가 투명하게 정착될수록 대통령이 권력투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제도상 주어진 권력 만으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임기제 대통령이 완전히 무력한 것은 아닙니다. 엄연히 제도적인 권력은 그를 통해야 하니까요. 그가 여타 세력 그룹들과 타협을 한다, 는 것이 실체적인 모습에 가까울 것입니다.
결국 국가 권력 집단 내부에도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헤게모니 개념은 원래, 오늘날의 ‘지배’라는 것이 일방적이거나 완전히 고착된 모습을 띠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입니다. (헤게모니의 개념에 대해서는, 저의 앞 글, 매트릭스와 헤게모니 참조. 아래 링크.)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473759
미국을 이끌어가는 권력 집단 내에서도, 여러 세력 그룹간에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과 협상, 양보, 타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결과 형성된 여러 세력 그룹 간의 관계는 서로 끊임없이 조금씩 뺏고 빼앗기는 과정 속에서 지속적이고 동태적인 모습을 띠게 됩니다. (헤게모니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제 앞 글 참조)
이렇게 형성된 미국의 통치 그룹을 저는 ‘미국 패권세력’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미국을 통치하며, 미국의 패권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그룹입니다.
이 패권세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제도적인 권력과 커튼 뒤에 존재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세력들 간의 연합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대통령과 정치가들(민주당, 공화당), 관료집단, 산업자본, 금융자본 등의 연합체일 것입니다.
산업자본으로는 군산복합체, 석유메이저, 곡물메이저, 건설족 등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건설족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미국 부동산 버블 기간 동안 초과이윤을 창출했고, 현재는 이라크 재건사업을 독점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은 여러 번의 금융공황을 겪은 결과 산업자본이 은행자본에 예속된 결과가 되었습니다. 여러 산업자본은 은행자본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일사분란한 연대가 가능합니다.
미국 패권세력 내부에서 상호간에 형성하는 관계는 앞서 얘기했듯이,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실체에 근접할 것입니다.
패권세력 내부에서도 여러 그룹간에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경쟁이 벌어집니다. 어느 시점에는 특정 그룹이 패권세력 전체를 주도하다가, 상황이 변하게 되면 다른 그룹이 약진합니다.
여건이 무르익으면 헤게모니가 단단하게 장악되고 여건이 변화하면 약화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럴 때는 물러서서 다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여건이 조성되면 다시 나서곤 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패권세력 내에서 그룹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이 패권세력은 미국을 통치하고 있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세계 패권 유지는 여러 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몰론 그 지배라는 것도 100% 완전무결한 지배를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도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해야 합니다. 소프트파워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동원할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지배-피지배 관계, 권력 관계의 실체적인 모습은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물며 우리들의 직장생활 내에도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는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엄청 봅니다. 일방적인 지배가 아니라 헤게모니 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모론에도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음모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집단이 존재하면서 음모적인 수단을 통해 지배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그 집단이 행사하는 지배를 100% 완전무결한 지배, 일방적인 지배, 명시적인 지배라고 해석하게 되면 음모론을 싸구려 ‘소설’ 정도로 치부하게 됩니다.
미국 패권세력의 경우도 이들이 물리적으로 동일한 공간에 모여서 세계 지배를 위한 ‘음모’를 꾸미는 회의를 한다, 는 식의 명시적인 구조를 가지고 지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 내에 존재하는 여러 세력 간의 느슨한 연대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패권세력 내부의 권력 관계에, 패권세력이 미국을 통치하는 모습에, 미국 패권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관계에,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하면 실체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소설로 치부하기 어려운 세계적인 석학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의 저서, ‘미래를 말하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책입니다. 미국의 극우 보수파들의 체계적인 ‘음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언어학’이라는 新 학문분야를 개척한 석학이요, 미국의 양심,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리우는 노암 촘스키의 인터뷰집,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도 ‘음모론’을 주장하는 책입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기업 권력이며, 미국은 ‘가짜 민주주의 국가’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깨어있으라”고 충고합니다. 왜곡된 선전에 세뇌당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어떤 주장을 ‘음모론’이라 하여 근거없는 소설 쯤으로 쉽게 치부해버릴 것은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두 편의 글을 더 올리려고 합니다. 모두 서로 관련이 있는 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