崇美주의, 親美주의, 用美주의, 反美주의 (08.12.31)
우리 나라에서 미국을 대하는 태도는 이 글의 제목처럼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 4가지 태도가 항상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崇美주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用美주의를, 어떤 경우는 親美주의까지도 反美주의라고 몰아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反美주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親美주의를, 어떤 경우는 用美주의까지도 崇美주의라고 몰아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입장은 위 4가지 중 객관적으로는 用美주의라 할 수 있을 듯 하고, 저 스스로는 진정한 親美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친미주의자인 가장 근본적 이유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국가 간 외교의 근본원리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원교근공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고구려와 돌궐족이 ‘형제의 맹약’을 맺고 당나라를 견제했던 케이스입니다.
돌궐족은 오늘날 터키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스탄계 국명을 가진 나라들을 이루는 민족입니다. 이들은 원래 당나라 북서쪽에 살다가 중앙아시아로 이주해갔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형제의 나라’ 터키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인연으로 우리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며, 실제로 우리 한국사람들에 대단히 호의적이라는 것인데,
나중에 터키가 우리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는 이유가, 옛날 고구려와 돌궐족이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터키 역사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어서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접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터키 사람들은 1400년 전에 맺은 ‘형제의 맹약’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참 경이롭고 흥미진진한 얘기라서 정말 사실인지 터키 대사관에 전화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옛날 고구려와 돌궐이 맺었던 형제의 맹약은 원교근공이라는 외교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지혜는 1400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흔히 우리 한반도를 둘러싸고 강대국들이 대립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미국을 우리의 파트너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외교상의 가장 근본 이치입니다.
미국은 물리적인 조건으로 인해 최소한 우리 한반도에 영토적인 야심은 갖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과 일본은 우리 한반도를 직접 침략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남하를 시도했고, 우리 한반도와 주변 바다에서 일본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변 강대국들 중 미국을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외교적으로는 자명한 진리입니다.
이러한 외교 원리는 국제적으로 유사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폴란드는 주변국인 독일과 러시아에게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폴란드는 최근 미국을 파트너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기지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 최근 독일에 있던 미국의 군사기지가 폴란드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폴란드는 러시아의 야욕에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교적으로 현명한 선택입니다.
북한의
북한은 중국과 맹방이지만, 내심 중국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을 추진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자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저의가 무얼까요? 나중에 북한이 내부의 혼란으로 정권이 붕괴하기라도 하면, 북한을 중국의 한 성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의도입니다.
우리도 화가 날 일이지만, 북한으로서도 속이 뒤집힐 일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불만을 크게 드러내놓지도 못합니다. 그럴수록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이처럼 우리가 주변 강대국들 중 미국을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외교적으로는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에, 저는 친미주의자입니다. 그럼 미국과의 관계 설정은 어떠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親美주의는 이렇습니다.
우리 나라는 미국과 진정한 우방(友邦)이 되어야 합니다. 友邦이란 친구 우友자에 나라 방邦자입니다. 즉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친구란 어떤 것일까요?
초등학교 시절쯤을 돌이켜봅시다. 친구 중에 아주 부자인 친구, 싸움 잘하는 친구가 있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비굴하게 빌붙는다고 해서 진정한 친구로 대우받을 수 있을까요?
친구란 종이 아닙니다. 비굴하게 구는 친구는 오히려 친구로서 대우를 못 받습니다. 내가 친구보다 부와 무력이 못하다고 해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도 그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한국을 우방으로 대하는 것은 다 이해타산에 근거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국제관계에서 순수한 우정, 한 쪽이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에게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보고자 합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큰 규모로 파병했고, 이라크 전쟁에는 영국 다음으로 규모가 큰 파병국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파병했습니다.
이만하면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도 당당히 요구할 근거들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미국과 갈등을 많이 빚는 듯이 보였지만,
한편으로 친구로서 당당히 관계를 맺자는 것이 미국의 패권을 인정치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국의 패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8년간 부시정부의 깡패짓 때문에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많이 손상됐습니다. 세계적으로 미국을 조롱하고, 미국의 몰락을 예측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미국의 이미지는 많이 추락했습니다(오바마의 당선으로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항상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가 존재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략가 헨리 키신저의 저서, ‘외교’의 첫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치 어떤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처럼, 모든 세계에는 자신의 가치에 따라 전 국제체제를 형성하고, 자신의 힘과 의지, 지적인 능력으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국가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자연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는 항상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힘을 행사하고, 국제 질서도 자신의 뜻대로 만들고자 시도합니다.
어떤 강대국이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국제관계에서 호혜평등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킬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역사를 보면 패권을 달성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나았다는 사실입니다. 무법보다는 악법이 나았다는 것이 냉엄한 역사의 진실입니다.
르네상스기 이후 2차대전까지 유럽에는 패권을 달성한 국가가 없었습니다. 대영제국이 패권을 달성한 국가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의 무력 사용을 완전히 금지시킬 정도의 지배력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1, 2차 대전이라는 역사의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즘 미국의 몰락 이후 다극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들이 나오는데, 다극체제가 좋을 것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환상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냉전 시기의 미.소 양극 체제는 그나마 2극 체제였기 때문에 큰 혼란이 없었습니다. 국제 체제가 3극 이상이 되면 필연적으로 혼란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미국의 패권 체제가 선(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몰락을 바란다면 먼저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극체제란 전혀 대안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대안 국가가 존재한다고 해도 패권 체제의 전환시에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오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패권체제는 절대 평화롭게 바뀔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는 전략적 가치 때문에 더 그럴 것입니다.
로마제국 몰락 이후 패권이 확립되지 못하면서 혼란은 극대화되었고, 결국 중세의 암흑기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중국에서 중원을 강력하게 장악하는 절대왕조가 성립되지 못하면 지역할거, 지역간 쟁패의 혼란기가 이어졌습니다.
세계 차원에서 보면 유럽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는데, 1, 2차 대전이라는 재앙을 거쳐야 했습니다. 미.소 양극체제를 이루었던 세계 패권이 미국 단일 패권으로 넘어가면서 러시아와 공산권국가들에는 대재앙이 발생했습니다.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자질을 따져보면 어떨까요?
중국, 러시아, 일본은 민주국가로 보기 힘듭니다. 미국은 최소한 민주국가라는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이들 국가에 비해 패권국으로서 낫습니다.
같은 민주국가들인 영국, 프랑스, 독일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구미의 여러 국가 사람들을 두루두루 접해본 사람들의 전반적인 견해를 보면, 그래도 미국사람들이 제일 합리적이라고 합니다.
어떤 국가가 아직 힘을 못 갖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힘이 없을 때 선량해보이던 사람이 힘을 갖게 되면 달라진다는 경우들을 개인의 인생살이에서도 자주 보게 됩니다.
일전에, 기업의 임원이 CEO와 맺는 관계는 호랑이와 동거하는 것과 같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참 절묘한 비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패권국가와의 파트너십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패권국가와 동맹을 맺어 잘 지낸다고 해도, 방심하는 순간 호랑이의 발톱에 할큄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패권국가와의 관계 맺음에는 현명한 지혜와 방심하지 않는 긴장이 필요합니다. 국제사회라는 곳은 원래 냉엄한 곳입니다.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입니다. 그 냉엄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거나, 패권을 부정한다고 될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은 두 편의 글을 올렸습니다)